세계대전 당시 발동한 법 꺼내 들어
차량 견인·시위대 계좌 동결 강수도
시위 지지 모금액 56%는 미국에서
"외국의 정치 조작서 안전하지 않아"
캐나다 정부가 ‘긴급조치’라는 강수를 꺼내 들었다. 1970년 이후 반세기 만이다. 3주째 이어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반대 시위로 사회ㆍ경제적 혼란이 지속되고 국민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백신 반대 시위를 끝내기 위해 자신의 ‘긴급조치법 선언권’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불법적이고 위험한 행동이 계속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며 “공권력이 제대로 법을 집행하기 어렵다는 게 명백해졌기 때문”이라고 사유를 설명했다.
이 법은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에서 연방정부가 치안을 지키기 위해 주(州) 관할을 넘어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캐나다 역사상 해당 법이 발동된 건 딱 세 차례, 전신인 ‘전쟁대책법’ 시절 두 번의 세계대전과 1970년 퀘백주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 봉기 진압 때다. 1988년 법 개정 이후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 안정을 이유로 전쟁 때나 썼던 케케묵은 법안을 52년 만에 꺼내 든 셈이다.
법이 일주일 내에 의회 승인을 받아 발효되면 연방정부는 특정 지역에서 이동을 통제하고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게 된다. 법원 명령이 없어도 시위 관련 차량 견인뿐 아니라 시위대와 이들에게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 동결도 가능하다. 연방경찰인 로열 캐나다 기마 경찰대도 진압에 투입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연방군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트뤼도 총리는 “군은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의 강경대응은, 현 시위를 공공 안전을 위협하는 긴급한 사안으로 봤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29일 수도 오타와에서 백신 접종 의무화 반대 집회가 처음 시작한 이후 시위 불길은 연일 뜨거워지고 있다. 엿새간 막혀 있던 미국과의 핵심 교역로 ‘앰베서더 다리’는 전날 통행이 재개됐지만, 여전히 오타와, 몬트리올 등 주요 도시 곳곳에서는 수천 명이 방역조치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국경지대 앨버타주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총기와 탄약을 숨겨 놓고 있다가 경찰에 적발ㆍ압수되기도 했다. 미 CNN방송은 “시위를 진압하려는 경찰을 상대로 무력을 휘두르려는 의도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강경 카드가 인권 수호자를 자임해 온 트뤼도 총리에게 정치적 압박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뤼도 총리는 오랜 기간 △성소수자 존중 △인권 비(非)수호국과의 무기거래 반대 등을 주장하며 인권을 중시하는 평화 수호자임을 자처해 왔는데, 공공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 탓이다. 웨슬리 와크 오타와대 교수는 “이번 사태는 총리가 직면한 최악의, 그리고 가장 혹독한 시련”이라고 평가했다.
한편에서는 이번 시위가 외세에 의해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영국 가디언은 이날 캐나다 시위를 돕기 위해 9만2,000건의 모금이 이뤄졌는데, 전체의 절반 이상(56%ㆍ43억3,000만 원)이 미국에서 나왔다고 보도했다. 기부금을 보낸 사람들의 명단을 유출한 어나니머스 소속 해커는 매체에 “캐나다는 외국의 정치 조작에서 안전하지 않다”며 “이들이 미국식 극단주의에 빠진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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