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을 사모하는 화가 18인전'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3월 17일까지
'불쌈꾼(혁명가)' 백기완은 살아있다.
그의 1주기를 맞아 '백기완을 사모하는 화가 18인'이 화폭에 그를 불러내면서다. 한국을 대표하는 민중미술가 박흥순(71)이 그린 백기완은 평소처럼 흰 두루마기를 입고 두 팔을 쳐들고 있다. 그 뛰어난 묘사에 '거리의 백발 투사'였던 생전 백기완의 모습이 오롯이 겹쳐진다. 그의 머리 위로는 매 한 마리가 솟아 오르고 있다. 백기완을 대표하는 이야기 '장산곶매'다. 사람도, 풀나무도 못 사는 '막판(장산곶)'을 딛고 날개를 퍼덕이는 매는 민중의 희망이다. 작가는 백기완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이 작품, '백기완과 장산곶매(2022년 작)'를 그렸다.
국내 민중미술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18인의 전시가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통일문제연구소에서 열린다. 백기완의 집필실이 있는 이곳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민중운동의 거점이었다. 재야 민주 인사들이 이곳에서 시국회의를 열고, 시국선언문을 썼다. 이번 추모전을 기획한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14일 통일문제연구소 앞 노상에서 열린 개막행사에서 "백기완의 외침 근저엔 항상 민중의 혼과 정신이 있었다. 이번 작품들 역시 그 안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백기완과 함께해온 정신이 들어 있다"고 했다.
농부 화가이자 뛰어난 초상 화가인 이종구(68)의 '별-백기완 선생(2022년 작)'에서도 '백기완과 장산곶매'는 숨쉬고 있다. 저승에서 별이 되어 '딱딱' 소리를 내며 날고 있다는 이야기 마지막 장면의 장산곶매가 백기완의 얼굴 위로 점점이 표현된 작품이다. 유 교수는 "가히 우리 시대의 대표적 초상화의 하나로 꼽힐 만한 감동이 있다"며 "우리가 그 별의 화신"이라고 했다.
1894년 죽창을 들고 전북 부안 백산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을 그린 신학철(79)의 '백산 일어서다(2020년 작)', 망월동 묘지 한편을 지키는 '오월의 전사'와 풍요로운 남도의 붉은 들판을 그린 김정헌(76)의 '광주항쟁 10주년에(1990년 작)' 등 작품은 투박하지만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진다. 백기완의 '호랑이 기상'이 느껴질 정도다.
이번 전시에 이름을 올린 김봉준, 김정헌, 김준권, 류연복, 민정기, 박불똥, 박흥순, 신학철, 심정수, 이기연, 이종구, 임옥상, 장경호, 주재환, 황재형, 홍선웅과 작고한 오윤, 손장섭은 민중미술을 이끌며 한때 시대를 풍미했다. 단색화로 대표되는 모더니즘과 각을 세우면서 1980년대 한국미술계를 뒤흔들었다. 이들의 저항적, 비판적 예술과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자'고 했던 백기완의 정신은 자연스럽게 만났다. 유 교수는 "(1986년 인사동에 마련된 민중미술 화가의 공간인) '그림마당 민'에서 전시할 때면 백기완 선생은 한 번도 빠짐없이 와서 격려하고, 작품평도 하고, 함께 즐거워했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민중미술은 철 지난 유행가 취급을 받으면서 잊혀 갔다. 유 교수는 "현장미술로서는 내리막이지만 그 정신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며 "민중의 삶과 혼과 정신을 담는, 그래서 이 시대의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정신은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백기완의 정신은 이달 출범한 '백기완노나메기재단'이 잇는다. 재단은 이번 추모전을 마지막으로 통일문제연구소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백기완 기념관'을 조성한다. 이번 전시는 백기완의 집필실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전시는 3월 17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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