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국내 자동차 시장에는 새로운 브랜드의 도입 가능성이 언급되었다. 국내 자동차 소비자들에게는 낯선 이름, ‘스코다(Škoda Auto)’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심각한 수준의 자동차 마니아들이나 해외 모터스포츠를 찾아 보고, 관람하는 ‘진성’ 모터스포츠 마니아들에게나 조금 익숙한 스코다 브랜드의 도입은 꽤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결국 ‘백지화’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낯선 브랜드, 과연 스코다는 어떤 역사와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
설전, 그리고 분노로 시작된 역사
국내에는 낯선 브랜드, 스코다는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다. 브랜드가 스스로 밝힌 ‘설립일’은 무려 1985년 12월, 일반적인 자동차 브랜드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독특한 점은 바로 그 시작에 있다. 흔히 ‘키워’라고 말하는 ‘글을 통한 싸움’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1894년, 당시 서점을 운영하던 ‘바츨라프 클레멘트(Václav Klement)’가 자신의 자전거를 위한 부품을 구매하기 위해 독일에 한 업체에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독일의 업체는 ‘독일어로 편지를 써라’라는 비아냥을 답장으로 보냈다.
이에 바츨라프 클레멘트는 분노를 표출, 기계공이자 자신의 형인 바츨라프 로린(Václav Laurin)을 설득, ‘로린&클레멘트(L&K)’ 사를 설립, ‘스코다’ 브랜드의 첫 시작을 알린다.
자전거, 모터사이클 그리고 자동차
1895년,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 L&K사의 첫 제작 부품은 자전거 부품이 되었지만 로린은 자신의 기계공 경험을 살려 모터사이클 제작에 나섰다. 다만 자전거 제작 경험만으로는 ‘온전한 모터사이클’ 개발의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독일의 로베르트 보쉬(Robert Bosch)에 도움을 받아 ‘온전한 모터사이클’을 생산, 판매하게 되었다. 이들의 모터사이클은 체코는 물론 영국 등 유럽 주요 국가 등에도 판매되었다. 참고로 로베르트 보쉬는 현재에도 각종 기계 공학 및 부품 업체로 유명한 ‘보쉬’의 창업주다.
바츨라프 형제는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1905년, 자동차 사업에 대한 의지와 함께 첫 작품을 선보이며 자동차 시장에 뛰어든다. 이는 체코 역사 상 ‘타트라(Tatra)’ 사 이후 두 번째 자동차 제조사의 등장이었다.
첫 번째 차량인 ‘브와튀레트 A(Voiturette A)’는 1905년부터 1097년까지 매우 짧은 시간만 판매된 차량이었지만 당대의 자동차 설계, 개발 기술 및 사상을 고스란히 이어 받은 차량이었고, 완성도 역시 우수해 시장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대전을 마주하다
첫 번째 차량을 선보이며 L&K는 말 그대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과 달리 국제 정세는 불안했고, 결국 세계대전의 포화가 전 유럽을 혼란으로 이끌었다.
체코는 주요 전장은 아니었지만 전쟁의 흐름 속 L&K의 주요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실제 L&K 역시 전후의 활동을 언급할 뿐 ‘전쟁 당시’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L&K는 트럭을 생산, 판매했으며 이후 자동차 사업을 담당하는 새로운 사업부, 즉 ‘ASAP(Akciová společnost pro automobilový průmy)’를 설립했다.
ASAP는 여전히 L&K의 엠블럼을 내세우는 구조였으나 당대 체코슬로바키아의 대기업인 ‘스코다 웍스(Škoda Works)’가 이를 인수 ‘스코다 엠블럼’을 앞세우게 만들었다.
1930년대 L&K 대신 세 개의 날개를 단 화살, 즉 ‘스코다’ 브랜드를 앞세우게 된 회사는 자신들의 역량을 과시했다. 실제 새로운 디자인, 설계 그리고 백본 섀시 및 독립식 서스펜션 구조 등 독특한 기술 구성은 대중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게다가 파퓰러, 래피드, 슈퍼브 등 소형부터 중형의 각 세그먼트의 차량들을 빠르게 개발, 시장에 선보이며 1933년 체코슬로바키아 내수 시장 3위의 점유율을 자랑하게 되었고, 1936년 시장 선두에 오르는 쾌거를 누리게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을 겪다
제 1차 세계대전은 막이 내렸지만 그 불씨는 어둠 속에서 계속 타올랐고 결국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나치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고 곧바로 스코다의 공장을 군수공장으로 전환했다.
나치 독일의 군수공장으로 전락한 스코다의 공장은 당시 경전차인 ‘LT vz. 35’을 생산했으며 이를 개량한 LT vz. 38 또한 생산하게 되었다. 경전차 외에도 각종 전차용 주포 개발과 전차 개발 기획 등을 담당하게 되어 자동차 제조 업체의 미래를 밝히는 소재 및 제조 기술의 발전을 간접적으로 이뤄낼 수 있었다.
다만 '유산'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전쟁은 무릇 많은 산업, 공학 부분에 큰 발전을 돕지만 그의 대가를 지불할 때에도 있다.
실제 제 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나치 독일의 ‘패망’이었다. 이에 나치 독일의 전력에 도움을 주었던 스코다의 생산 공장 및 헤드쿼터 등 많은 거점들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전후 재건’에 대한 먹구름을 떠올리게 했다.
공산주의의 도래 그리고 국영기업 ‘스코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은 말 그대로 ‘공산화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체코슬로바키아 역시 이러한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 공산주의 정권은 국가 경제 및 산업 발전을 위해 당연하게 ‘스코다’를 국영화했으며 대중들을 위한 자동차 생산 기지로 전환했다.
흔히 ‘공산주의’의 도래가 산업의 경쟁적 발전을 저해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스코다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듯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우수한 품질의 자동차를 꾸준히 선보였다. 실제 1101 튜더 로드스터나 440, 445 옥타비아, 1000MB 등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차량들이 이 시기에 꾸준히 등장하게 되었다.
게다가 공산주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1959년에는 소형 컨버터블 모델인 ‘펠리시아’가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당대 미국 시장 정서를 감안한다면 작은 차체와 작은 엔진, 그리고 ‘사후관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동구권 차량이 미국 시장에 판매되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인상적인 기록이다.
공산주의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는 와중에도 스코다는 대외적인 활동에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영국 등과 같은 서방국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모터스포츠 대회에 꾸준히 도전해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스포티한 성격을 가진 래피드 등은 일반 시장에서 ‘빈자의 포르쉐’라는 표현 아래 서유럽에서의 활약을 이어갔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냉전 말기 동유럽의 산업 수준이 서유럽 및 미국 등에 밀려가는 상황 속에서도 스코다는 ‘경쟁력 있는’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벨벳 혁명, 그리고 폭스바겐 그룹과의 만남
냉전이 끝났고 체코슬로바키아 역시 새로운 변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벨벳 혁명은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이별’을 낳게 되었고 수많은 국영기업들의 민영화, 매각 등과 같은 여러 활동이 이어지게 되었다.
경쟁력 있는 자동차 제조사, ‘스코다’ 역시 민영화의 대상이 되었고 시장의 수 많은 기업들이 스코다 인수, 합병에 관심을 보였다. BMW, GM, 르노는 물론 포드, 피아트와 메르세데스-벤츠 등 수 많은 업체들이 스코다 인수 의사를 드러냈다.
그 결과 최종 인수 협상자로 낙찰된 것이 ‘폭스바겐’이었다. 폭스바겐은 스코다 브랜드의 브랜드 폐지보다는 유지하는 것이 옳다 생각했고, 이를 바탕으로 ‘스코다 브랜드의 성장’을 비전으로 제시해 체코 정부의 이목을 끌었다.
체코 정부의 승인을 받은 폭스바겐은 이후 지분 매입과 출자, 합작 등 다양한 절차를 조심스럽게 진행했다. 2000년 폭스바겐 그룹은 스코다의 지분 100%을 모두 인수하며 ‘완전한 자회사 전환’을 이뤄냈다.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믿을 수 있는 브랜드
자유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스코다는 처음에는 ‘과거의 유산’에 머무르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이내 시대의 흐름에 오르게 된다. 시장이 요구하는 차량 개발에 공을 들이고 효율성을 고민하며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동구권 브랜드들 특유의 ‘단순히 저렴한 제품’에 그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차량 품질 개선에 많은 공을 들였고, 폭스바겐 그룹 역시 이러한 행보에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스코다 고유의 것’이라는 부분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폭스바겐 그룹의 ‘성공 신화’를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차량들을 빠르게 선보일 수 있었다. 실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파비아, 라피드, 스칼라 및 옥타비아, 슈퍼브 등 21세기 스코다의 주요 차량들이 빠르게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2015년, 스코다는 영국 소비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자동차 브랜드로 거듭나며 ‘새로운 시대’의 스코다의 가치를 높였다.
덧붙여 시장 흐름에 발을 맞추며 세단 및 해치백 시장에 그치지 않고 SUV 시장에 대한 도전을 이어갔다. 실제 카록과 코디악 등이 다양한 시장에 투입되었고, 중국과 인도 시장에 대한 의지와 함께 전략 차종 등을 선보이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스코다
스코다는 2021년 여름, ‘넥스트 레벨(NEXT LEVEL)’이라는 타이틀 아래 오는 2030년까지 이어질 브랜드의 단기 활동 계획 및 브랜드 전략의 개편을 알렸다.
‘넥스트 레벨’의 전략은 더욱 빠르고 넓은 ‘디지털화’ 그리고 ‘전동화’에 초점이 맞춰 있으며 이러한 ‘기술적 혁신’ 속에서도 대중적인 브랜드, 그리고 사람 곁에 있는 브랜드로 존재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스코다는 2025년을 1차 마일스톤으로 삼고, 2030을 목표로 다양한 전략을 전개하며, 그 중 핵심은 바로 오는 2030년까지 유럽 내 판매 5위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을 삼았다. 이와 함께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차량의 비중 확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 대비 50% 줄이는 것을 내세웠다.
이외에도 스코다가 속한 체코를 비롯 유럽 전지역과 함께 발전하기 위해 사회공헌 활동에도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소비자 및 다양한 국가, 민족과의 협력을 꾸준히 이어갈 예정이다 밝혔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트렌드를 반영해 온라인 판매를 비롯해 다양한 판매 및 마케팅 전략은 물론, 고객 체험을 위한 다양한 대외 활동 프로그램도 개발, 전개할 예정이라 밝혔다. 온라인 판매 플랫폼 및 시스템은 현재 구축 중에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로 시범 운영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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