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확률 96% vs 4%. 지난 호주 오픈 결승전에서 테니스 스타 다닐 메드베데프와 라파엘 나달이 각각 승리할 확률이었다. 경기는 일방적으로 보였다. 나달은 물론 역사에 남을 최고의 선수이지만 86년생으로 올해 37세, 운동선수치고는 나이가 많은 편이다. 전성기가 지나 수년 내에 은퇴할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메드베데프는 27세로 떠오르는 슈퍼스타다. 얼마 전에 있었던 US오픈에서 우승하고 그 기세를 몰아 호주에 당도한 상태였다. 최상의 컨디션이다.
초반부만 해도 나달은 메드베데프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3세트를 이기면 승리하는 게임에서 메드베데프는 초반 2세트를 모두 따냈다. 스코어뿐만 아니라 경기의 질을 보여주는 각종 지표에서도 메드베데프가 훨씬 앞섰다. 대회 조직위의 알고리즘은 메드베데프와 나달의 승리 확률을 '96% vs 4%'로 계산했다.
이대로 다음 세트도 메드베데프가 이기고 경기가 끝난다고 생각했다. 이미 기울어진 저울이라고 생각했다. 나달이 무너질 만한 상황이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전세가 완전히 밀린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끈질기게 따라붙었고 힘들지만 한 점 한 점을 기어코 따냈다. 일방적이었던 경기가 조금씩 나달의 손에 들어왔다. 나달은 테니스 실력뿐만 아니라 반드시 이기겠다는 투지도 최고였다. 그리고 장장 5시간 24분이라는 혈투 끝에, 새벽 1시에 나달은 메드베데프를 이기고 호주오픈에서 우승했다. 메이저 대회 통산 21승이라는 테니스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살다 보면 게임이 이미 끝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는 모두 한때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꿈 많은 학생이었지만 사회에서 깎이면서 내가 해낼 수 없는 게 많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능력의 한계, 견고한 사회 구조, 올라갈 수 없는 사다리. 서른이 넘어가자 친구들은 이미 삶이 어느 정도 결정된 것 같다고 말한다. ‘수저’는 정해져 있고 직업도 정해졌다. 여기서 노력한다고 삶을 크게 바꿀 수 있을까? 현실성 없는 큰 꿈을 꾸기보다는 내 삶을 받아들여 소소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 아닐까?
최근 스타트업에서 영입 제안을 몇 번 받았다. 그중 몇 건은 꽤 매력적이어서 나를 고민하게 한다. 항상 내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불안감 때문에 사업은커녕 사람들이 이름 들어 본 회사만 다녔다. 겪은 적 없는 불안정성에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 도전해도 괜찮은 걸까? 회사가 망하면 어떻게 될까? 커리어가 꼬이는 것은 아닐까? 결혼 적령기인데 이런 고민할 게 아니라 이제 결혼도 하고 더 안정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다시 나달의 경기를 돌려 본다. 승리 확률 96% vs 4%.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에서도 정신력을 유지하는 강인함. 당연히 나달은 최고의 선수지만 상대방도 현시점 세계 랭킹이 더 높은 최고의 선수였다. 이기고 지고는 두 사람의 투지가 갈랐다고 생각한다.
선택에 답은 없다. 네임밸류 있는 현 회사에서 더 배우고 다음 기회를 노릴 수도 있고, 이직해서 큰 꿈을 꿀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선택한 이상, 투지를 가지고 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다만 더 이상 이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몇 살인데' '도전하기에 늦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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