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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쟁탈전이 강대국 대리전으로… '국제화'하는 예멘 내전

입력
2022.02.12 05: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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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군은 사우디 지원, 반군 뒤엔 이란
예멘 후티 반군, 이례적으로 UAE 공격
UAE '간접 개입 방식'에 후티 보복 나서
韓 예멘 교훈 삼아 통일 청사진 그려야


지난달 18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주민들이 파괴된 건물 속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다. 전날 예멘 반군 후티가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 공항 등을 무인기로 공격하자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연합군이 반격 공습에 나서면서 최소 12명이 숨지고 건물 다섯 채가 파괴됐다. 사나=EPA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주민들이 파괴된 건물 속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다. 전날 예멘 반군 후티가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 공항 등을 무인기로 공격하자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연합군이 반격 공습에 나서면서 최소 12명이 숨지고 건물 다섯 채가 파괴됐다. 사나=EPA 연합뉴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 국제공항 내 신축 건설현장과 인근 정유공장이 미사일과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공항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었고 6명이 다쳤다. 인근 공업단지에서는 세 척의 대형 유조선이 폭격됐다.

공격 주체는 예멘 후티 반군(자칭 안사룰라ㆍAnsar Allah). 초기 지도자 ‘후세인 바르레딘 알후티’의 이름에서 따온 이 조직은, 이슬람 시아파 분파인 자이드파가 주축이다. 이들은 “예멘 내전에 지속적으로 개입한 것에 대한 대가”라며 원인을 UAE에 돌렸다. UAE는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간과할 수 없는 중대 사태”로 규정, 보복 공습에 나섰다.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까지 반격에 동참했다. 이들이 한달 가까이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중동 정세는 폭발하기 직전 활화산처럼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사우디-이란 대리전 양상으로

중동 지역 긴장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초 후티 반군은 사우디와 접하고 있는 예멘 북서부 사다주(州)를 점령했고, 9월에는 수도 사나를 손에 넣었다. 이듬해 1월에는 대통령궁마저 장악하며 예멘 ‘하디 정부’를 축출했다. 한 달 뒤에는 임시 헌법까지 발표했다. 기존 의회를 해산하고 새 의회를 구성, 2년간 정부 역할을 맡게 될 대통령위원회도 설치했다.

권력을 잃은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은 남부 항구도시 아덴으로 쫓겨갔고, 한달 뒤 사우디를 위시한 ‘아랍연합군’의 군사지원을 받아 반격에 나섰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하디 정부와 후티 반군 간 기나긴 내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언뜻 한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처럼 보이지만, 예멘 내전은 단순한 ‘집안싸움’이 아니었다. 후티 반군 뒤에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있다. 외신들은 후티가 이란으로부터 기술지원을 받아 대함미사일, 대전차미사일, 휴대용지대공미사일,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 등 다양한 미사일 기술과 드론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정부군은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받고 있는 사우디는, 수니파 하디 정부를 복원하고 지역 내에서 점증하는 이란의 영향력을 억지ㆍ축소하기 위해 아랍연합군을 구성했다. UAE를 비롯, 바레인, 쿠웨이트, 이집트, 요르단, 모로코, 수단, 세네갈, 카타르가 연합군에 합류하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의 아랍에미리트(UAE) 공격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중동. 그래픽=강준구 기자

예멘 후티 반군의 아랍에미리트(UAE) 공격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중동. 그래픽=강준구 기자

굳이 미국과 이란 간 오랜 갈등을 꺼내 들지 않아도, 예멘에서 후티가 권력을 잡는 시나리오는 사우디에는 악재다. 동쪽으로는 이란, 북쪽으로는 시리아, 남쪽으로는 예멘으로 삼면이 둘러싸이면서 안보 위기에 직면한 탓이다.

결국 ‘하디 정부군’과 ‘후티 반군’의 권력 쟁탈전이라는 전형적인 내전 양상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역내 종교 계파 간 갈등과 이해관계 등이 개입되면서 사우디와 이란 간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된 셈이다. 이 와중에 예멘에 본부를 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와 남부 예멘 사회주의 조직 ‘남예멘 분리주의 세력’까지 득세하면서 예멘은 점점 혼란에 빠졌다.

후티, 사우디에서 UAE로 전선 넓혀

다만 지난달 후티 반군이 UAE를 공격한 것을 두고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잇따른다. 그간 후티 반군의 주요 공격 타깃은 사우디였다. 지난해 11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정유소에 폭격을 가하는 등 사우디 핵심 국가시설을 공격한 사례는 적지 않았지만 UAE 본토를 직접 공격한 적은 드물었다.

UAE는 2015년 아랍연합군의 핵심 참여국으로 합류, 예멘 정부군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왔다. 그러나 2018년부터는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자제해왔다. 2019년에는 예멘에 파병했던 지상군 수천 명을 철수시키며 발을 빼는 모습도 내비쳤다. UAE 지원을 받는 남부 분리주의자 그룹 ‘남부과도위원회(STC)’ 같은 조직도 지난 몇 년간 후티 반군 공격을 자제해왔다. 되레 STC는 반군이 아닌 예멘 정부와 직접적으로 충돌하기도 했고, UAE의 군사 지원을 받아 예멘 임시 수도 아덴을 통제하기도 했다.

지난달 17일 예멘 반군 후티의 공격을 받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정유시설 항공 사진. 아부다비=AP 연합뉴스

지난달 17일 예멘 반군 후티의 공격을 받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정유시설 항공 사진. 아부다비=AP 연합뉴스

후티 반군도 UAE를 향한 공격을 자제했다. 2018년 7월 아부다비 공항을 공습했다고 주장한 것이 마지막이다. 예멘 내전 개시 4년 만인 2018년 12월 13일, 예멘 정부와 반군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나 △전쟁 포로 교환 △정부군과 반군의 최대 격전지 호데이다 지역 휴전 △유엔의 휴전 감시를 주 내용으로 하는 휴전합의를 맺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계속된 내전으로 당시 800만 명이 아사 위기에 처하면서 나온 조치다.

후티 반군이 돌연 전선을 UAE까지 넓힌 까닭은 뭘까. 이유는 UAE의 ‘간접 개입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2019년 이후 UAE는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줄인 대신, 예멘 내 다른 조직을 지원해 이들이 반군과 싸우도록 했다.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같은 방침 속에 지난 몇 주 동안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의 조카가 이끄는 합동군(JF)에 속한 친정부 민병대 ‘자이언츠 여단’이 후티 반군 공격에 나섰다. 여단은 지난해 12월 말에는 샤브와 지역으로 진격, 2주도 안 돼 반군을 축출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이들은 알바이다주와 마리브주 후티 반군 점령 영토로 진격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침없는 기세에 지난해 말부터 전세가 정부군 쪽으로 역전될 조짐을 보이자, 후티 반군이 사실상 ‘몸통’인 UAE 보복에 나선 것이다.

실제 UAE 본토 공격을 예고하는 사례도 몇 차례 있었다. 공항 공격 보름 전인 지난달 2일, 후티 반군은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홍해 호데이다 항구 인근에서 UAE 국적 민간 수송선 한 척을 무력 나포했다. 공습 나흘 전(13일)에는 반군 지도조직 최고정치위원회 무함마드 알부하이티 정치국장이 현지매체와의 인터뷰에서 “UAE가 적대행위를 계속할 경우 중심부를 타격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긴장 수위가 높아졌다.

지난달 27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후티 반군 지지자들이 총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나=EPA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후티 반군 지지자들이 총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나=EPA 연합뉴스


역내외 개입으로 내전 국제화

후티 반군의 UAE 공격은 ‘내전의 국제전화’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다른 제3세계 약소국과 마찬가지로 예멘 근 현대사는 강대국의 식민지 분할 점령 정책, 남북 예멘 간 분쟁, 통일 이후의 내부 세력 간 갈등으로 점철됐다. 여기에 이란 사우디 미국 등 외부 세력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며 내전은 국제 문제로 비화했다.

이는 예멘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이슬람 종파 사이 대립, 정치 지도자들의 통합노력 결핍, 주변국들의 자국 이기주의 등 다양한 요인에 기인한다.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경험과 분리 독립, 전쟁, 불완전한 통일, 내전과 외부의 개입까지 그야말로 혼돈의 역사가 현재 나타나는 갈등과 폭력의 기저에 깔려 있다는 얘기다. 예멘에는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언급한 ‘크고 작은 단층선(斷層線)’이 그어져 있다. 구획에 따라 구별 짓기가 강요되고, 갈등을 키워 끝없는 내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국제적 분쟁으로 확대된 셈이다.

예멘 내 갈등은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교훈을 남긴다. 1967년 남ㆍ북으로 갈라선 예멘은 1990년 통일을 이뤘다. 하지만 통일 후엔 독일처럼 하나가 되지 못하고 더욱 극심한 분열과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타산지석 삼아 한반도 분쟁 관리와 평화 공존, 남북한 종전선언, 평화체제 구축, 평화통일까지의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통일 이후 세밀한 통합 로드맵도 기획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예멘에서 찾을 수 있다. 평화를 위해선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지만, 줄일 수 있다면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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