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전이 끝났지만 국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국경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1월 27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야시누바타에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친러시아 무장세력과 대치한 최전방 참호를 이동하고 있다. 야시누바타=AP/뉴시스
국경을 가르는 장벽들이 무너지고 세계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공간으로 거듭난다. 영국 런던대의 지정학 교수인 클라우스 도즈는 최근작 ‘국경전쟁’에서 세계인들이 이처럼 희망찬 탈냉전적 낙관주의 속에서 1990년대를 맞았다고 설명한다. 베를린 장벽이 1989년 11월에 무너졌으니 난데없는 기대는 아니었다. 자유민주주의가 이념 전쟁에서 최종 승리했고, 과학기술이 지구상의 거리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국경은 여전히 존재한다. 유럽에서는 전쟁이 임박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조만간 국경이 새롭게 그려질지도 모른다. 그것은 국경이 물리적 장벽이나 지도상의 경계선 이상의 무언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도즈는 국경이 국가 간 경계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활동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한다. 경제적 정치적 목적으로 자원과 사람, 나아가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활동 자체다. 도즈는 저서에서 국경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를 따져보고 군사주의와 테러, 난민 대책부터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팬데믹), 자원 확보 경쟁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국경 문제’들의 의미와 전망을 분석한다.
물 부족은 대표적 국경 문제 가운데 하나다. 2050년 무렵이면 많게는 수십억에 이르는 인구가 마시거나 일상용 또는 공업용으로 사용할 물을 충분히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면서 국가들은 강과 바다, 호수의 관리를 놓고 다툼을 벌인다. 강 상류의 국가가 댐을 건설하거나 농업용 수로를 확장하면 하류의 국가는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이 인더스강 물을 적당히 가져가라며 인도를 비난하는 이유다.
땅속의 물 역시 국경 문제를 일으킨다. 대수층은 지하수를 대량으로 함유한 암반 지층을 뜻하는데 세계적으로 270곳이 넘는 대수층이 여러 나라에 걸쳐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대수층을 두고도 다툼을 벌인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보다 1인당 사용량 기준으로 더 많은 양의 물을 대수층에서 끌어다 쓰는 상황에서 가자지구 주민들은 건강을 해칠 정도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물 배분 문제를 둘러싼 국가 간 대립이 치열한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수자원을 둘러싼 소규모 분쟁이 대규모 지역 분쟁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국경 전쟁'. 클라우스 도즈 지음ㆍ함규진 옮김ㆍ미래의창 발행ㆍ376쪽ㆍ1만9,000원
도즈는 우주공간에서도 국경 문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인공위성을 통한 통신 등 우주산업이 발전할수록 각국이 우주에서 맞부딪히는 일이 잦아질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90개국이 참여해 1967년 체결된 우주조약은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하는 외계 공간은 특정 국가에 귀속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당시에 우주선을 발사할 능력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과 소련뿐이었다. 도즈는 “우주 개발에 뛰어드는 국가가 많아지면서 종전 규칙과 규제가 낡았다는 인식이 높아졌다”면서 "룩셈부르크 같은 작은 나라들도 우주에서 이익을 보기 위한 미래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주에서 광물을 채굴하거나 거주공간을 건설하는 구상이 현실화한다면 군사적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
2019년 미국이 우주군을 창설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외계 공간 역시 자신들의 작전 영역이라고 선포했다.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그해 8월 로즈가든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그것은 빅딜입니다. 왜냐하면 외계 공간이 다음 전쟁 영역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모두에게 아주 분명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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