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선 후보 제주공약에
제주-서울 고속철 제외 전망
지속 과제로 검토 여지 남겨
18·19대 이어 갈등만 되풀이
“공론화 과정 우선적 필요”

지난달 26일 김영록 전남지사가 도청 브리핑룸에서 '서울-제주 고속철도’' 제20대 대선공약 반영 건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전남도 제공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의 '단골 공약'이었던 제주 해저터널 건설이 제20대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제주~서울 고속철도를 해저터널 방식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군불을 지핀 것이다. 그러나 제주 지역 반발에 부딪히면서 사실상 해저터널 공약을 접었다. 이번에도 표심을 얻기 위해 설익은 공약을 내걸었다가 철회하는 과거 전철을 되밟는 모양새다.
9일 민주당 제주도당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가 내부 논의 끝에 제주~서울 고속철도 사업을 이 후보의 제주 지역 공약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을 국토대전환 계획 차원에서는 장기적으로 계속 검토하기로 하면서 여지는 남겨 놓았다. 지역 정가에선 이 후보가 이번 주말쯤 제주를 방문해 지역 공약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때 이 후보가 제주 해저터널 건설을 언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달 23일 경기 의왕시 기자간담회에서 김포공항 존폐 문제를 언급하던 중 "전국을 KTX로 조밀하게 연결하고 장기적으로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효율적인 제주도 해저터널을 연결하자는 주장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해 주목을 끌었다. 이 후보는 다만 "섬은 섬으로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다른 생각도 있어 내부 논쟁이 치열하다면서 시간을 두고 계속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후보 발언 이후 전남 지역에선 제주 해저터널을 대선 공약에 포함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실제 김영록 전남지사는 지난달 26일 전남도청에서 비대면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제주 고속철도 건설을 제안하고, 대선 공약에도 반영해 줄 것을 공식 건의했다.
반면 제주 지역에선 해저터널 건설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놓고 갈등이 여전한데, 제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해저터널 건설 문제를 제주도민들과는 아무런 논의 없이 공약 반영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여론은 들끓었다. 실제 지역민 사이에선 "해저터널이 연결되면 제주는 내륙화해 환경 파괴와 섬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려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또 해저터널로 교통 접근성이 향상되면 제주는 숙박을 하지 않는 당일 관광지가 돼 체류형 관광객이 감소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에 이 후보 측은 관련 계획을 대선 공약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처럼 제주 해저터널 건설이 대선 공약에 들어갔다가 빠지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제18대 대선을 1개월 앞둔 2012년 11월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대선공약으로 해저터널 건설 공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반대 여론이 형성되자 공약을 철회했다. 2017년 19대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전남에서는 지역 공약으로 전남~제주 해저터널 건설을, 제주는 제2공항 건설을 요구하는 등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결국 공약 채택은 무산됐다.
제주 해저터널 건설 사업 논란은 2002년 한국교통연구원이 전남~제주 해저터널 건설 관련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촉발됐다. 2007년에는 제주도와 전남도가 공동으로 해저터널 건설 계획을 정부에 공식적으로 건의했지만, 정부가 거부 입장을 보이면서 없던 일이 됐다. 이어 2010년에는 국토부가 제주~전남 해저터널 타당성 조사 용역을 한국교통연구원 등에 의뢰하면서 또다시 논란이 일었다. 해저터널 사업 계획은 시기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당시 타당성 조사를 기준으로 보면 사업비 20조813억 원, 사업 기간도 14년에 달하는 초대형 공사였다. 그러나 용역 결과 경제성이 낮다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았다.
제주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제주 해저터널 사업이 단점뿐만 아니라 장점도 있는 만큼 해저터널 당사자인 전남과 제주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공론화 절차를 거치고, 환경 문제와 경제적 타당성 등을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이 우선돼야 소모적 갈등과 논쟁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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