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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렉스턴 스포츠·스포츠 칸
렉스턴 스포츠와 칸은 쌍용 라인업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이다. 렉스턴 스포츠와 칸은 지난해 쌍용의 내수 시장 모델별 판매량에서 2만 5,813대로 단연 1위를 기록했다. 2020년보다는 20% 이상 줄긴 했지만, 전체 판매의 45.8%를 차지했다.
두 모델이 국내 픽업트럭 분야에서 차지하는 입지는 독보적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판매된 픽업트럭 10대 가운데 8대 이상이 렉스턴 스포츠와 칸이었다. 국내 공식 판매 2년이 넘어가는 쉐보레 콜로라도 판매량은 렉스턴 스포츠와 칸의 15%에도 미치지 못했고, 지난해 국내에 처음 판매를 시작한 포드 레인저는 채 1,000대를 넘기지 못했다.(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 자료 기준)
이처럼 렉스턴 스포츠와 칸은 사실상 국내 픽업트럭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이 아닌 브랜드 차 가운데 국내에서 이처럼 특정 장르 시장을 독점하는 모델은 지극히 드물다. 이는 국내 시장 현실에 알맞은 가격과 상품구성을 잘 갖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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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렉스턴 스포츠·스포츠 칸
외국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2021년 완성차 수출량도 8,046대로 코란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물량은 2021년보다 68.3%나 늘었고, 수출 1위를 차지한 코란도와의 차이는 82대에 불과하다. 브랜드 대표 모델격인 올 뉴 렉스턴이 있지만, 렉스턴 스포츠와 칸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실상 쌍용을 떠받치고 있는 대표 모델로 자리를 잡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렉스턴 스포츠와 칸이 지난해 있었던 페이스리프트에 이어 다시금 업그레이드되었다. 판매 호조와 함께 우여곡절이 많았던 회사 매각 과정이 일단 정리 단계로 들어서는 등 긍정적 상황들을 맞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진 변화라 기대가 크다. 그러나 마냥 좋게만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자동차 업계도, 시장도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있었던 언론대상 시승에서 경험하면서, 이른바 ‘K-픽업’이 지닌 동전의 양면을 느낄 수 있었다. 달라진 렉스턴 스포츠와 칸은 아주 현실적 관점에서 개선의 방향을 잡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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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렉스턴 스포츠·스포츠 칸
우선 엔진은 올 뉴 렉스턴과 같은 것으로 바꾸면서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모두 높아졌다. 자동변속기 모델 기준으로 최고출력은 187마력에서 202마력, 최대토크는 42.8kgm에서 45.0kgm이 되었다. 수치상 변화는 크지 않지만, 실용 회전 영역대의 토크가 높아지면서 큰 덩치를 감당해야 하는 엔진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이는 운전자의 관점에서 가속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다.
변속기는 전과 같은 아이신제 6단 자동이다. 같은 엔진을 쓰는 올 뉴 렉스턴에 현대트랜시스가 공급하는 8단 자동변속기가 들어간 것과는 대조적이다. 단가와 내구성, 신뢰성 등 여러 측면을 고려했겠지만, 아쉬움은 있다.
업그레이드된 ADAS 시스템에 중앙 차선 유지 보조(차로 중앙 유지 보조, CLKA) 기능이 추가되었지만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스티어링 시스템은 랙 구동 전동 파워 스티어링(R-EPS)으로 바뀌어 스티어링 제어는 가능해졌지만, 변속기는 기존 것을 그대로 써 ACC 관련 제어 기능을 넣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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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렉스턴 스포츠·스포츠 칸
실제 기능을 사용하는 빈도와 관계없이, 승용차 개념으로 렉스턴 스포츠와 칸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은 아쉽게 느낄 만하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는 관점에서 보면 CLKA 기능이 추가된 것이 반갑기는 하지만, 같은 관점에서 ACC가 빠진 것은 아쉽다는 뜻이다. 물론 같은 관점에서, 실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전자제어 주행안정 시스템(ESP)의 업그레이드로 트레일러 스웨이 컨트롤 기능이 모든 모델에 추가된 것은 당연히 긍정적 변화다.
시승차로 마련된 익스페디션 트림에는 여러 커스터마이징 사항이 추가되었는데, 이들 역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엇갈린다. 시승차 기준으로 일부 항목은 장착 상태가 깔끔하지 못했고, 기능 면에서도 스마트폰 무선충전장치나 빌트인 공기청정기는 개별적으로 전원을 켜고 꺼야하는 등 따로 단 제품 티가 많이 난다. 접이식 리어 스텝은 있으면 편리하지만 이탈각에 영향을 주는 위치에 설치되는 것이어서 기능 면에서는 반쪽짜리다.
이들 커스터마이징 사항은 쌍용 라인업 전반에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는 것이어서 렉스턴 스포츠와 칸의 장단점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구매자는 이들 장치가 설치된 상태로 차를 인수하는 만큼 출고 후에 따로 달아야 하는 불편함이 없다는 것은 장점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모든 문제를 덮을 수는 없다. 게다가 일부 항목을 패키지화해 기본 판매 트림에 포함시켜 파는 만큼, 품질과 디자인, 성능과 내구성 등은 공장 생산 라인에서 조립되는 사항들과 같은 수준이어야 맞다.
가장 양면성이 크게 느껴지는 부분은 하드웨어 그 자체다. 동력계와 구동계, 섀시 구성이 현실적으로는 합리적 값과 상품 구성의 바탕이지만, 앞으로 렉스턴 스포츠와 칸이 지닌 경쟁력의 발목을 잡기 가장 좋은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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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렉스턴 스포츠·스포츠 칸
우선 엔진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은 단기적으로는 괜찮을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취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디젤 엔진의 우수한 저회전 토크 특성이나 차 크기에 비해 좋은 편인 연비 등은 렉스턴 스포츠와 칸이 꾸준히 인기를 얻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다만 운전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힘의 여유, 디젤 엔진 특유의 저속 저회전 소음 등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수요의 폭을 좁히는 여러 원인 중 하나다.
아울러 현행 규제는 물론 앞으로 예상되는 디젤 엔진 관련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율했다고는 하지만, 규제 변화의 흐름을 보면 디젤 엔진만으로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일부 수출용 모델에 한해 올라가고 있는 2.0L 가솔린 터보 엔진도 다목적이라는 차의 용도를 고려하면 성능이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렵다. 어느쪽이든 동력계의 확대나 전동화를 통한 보완은 반드시 필요하다.
섀시 면에서는 승차감과 핸들링, 제동감의 수준이 한층 더 높아지길 바라지만, 지금의 플랫폼에서 더 나은 수준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일 듯하다. 지금의 렉스턴 스포츠와 칸, 나아가 올 뉴 렉스턴의 승차감과 핸들링은 험로 이외의 도로 조건에서는 좋다고 하기에도, 나쁘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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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렉스턴 스포츠·스포츠 칸
보디온프레임 차체구조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아 모하비 더 마스터나 쉐보레 콜로라도 등 같은 구조의 차들 중에서도 승차감과 핸들링이 좀 더 잘 조율된 차들은 있다. 오프로드에서의 대응 능력은 렉스턴 스포츠나 칸이 더 뛰어날 수도 있겠지만, 일반 도로에서의 승차감과 핸들링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게다가 앞서 예를 든 차들이 오프로드 대응 능력이 더 낮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기능이 점점 더 늘어나 아쉽지 않을 만큼 다양하게 갖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렉스턴 스포츠와 칸, 나아가 쌍용의 모델 모두의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뭔가 한 덩어리로 잘 정리된 느낌을 주기보다는 있는 기능들을 집어넣고 나열하기에 급급한 느낌을 준다. 싼 값이 아니라면, 갈수록 눈높이가 높아지는 소비자를 설득하기 어려운 구성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값이 싸기 때문에, 혹은 값이 싼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고 잘 팔리고 있는 셈이다.
렉스턴 스포츠는 이미 데뷔 4년차, 렉스턴 스포츠 칸은 데뷔 3년차다. 두 차 모두 데뷔 당시부터 앞선 기술이나 개념을 담았다기보다는 틈새 시장을 노려 지극히 현실적인 차로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줬다. 차 자체의 경쟁력보다는 시장의 특수성에 기댄 측면이 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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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렉스턴 스포츠·스포츠 칸
국내 시장은 판도가 갑자기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외국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렉스턴 스포츠와 칸의 영역으로 치고 들어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매번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 차들이 국내 시장에서 계속해서 실패를 반복하리라는 법도 없다.
렉스턴 스포츠와 칸이 밝은 미래를 맞으려면, 좀 더 거시적 관점에서 차가 가진 특징과 여러 장점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지금 잘 팔리고 있는 모델이어서 더 그렇다. 박리다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을 때 또다시 휘청일 수밖에 없다.
글: 류청희 칼럼니스트
1996년 월간 <취미가> 필진을 시작으로 웹진/자동차 월간지 <비테스> 편집장, 웹진 <오토뉴스코리아 닷컴> 발행인, 월간 <자동차생활>, <모터매거진> 기자로 활동했으며 제이슨류쩜넷 운영 및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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