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후 가해 부모와 신속 격리 강화 불구
현장은 "기존 응급조치와 뭐가 다른지" 활용 저조
분리 아동 보호시설도 부족… "인프라 뒷받침돼야"
양부모 학대로 생후 16개월 아동이 숨진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피해 아동과 학대 의심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떼어놓기 위한 '즉각분리' 제도가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제도적 미비로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매뉴얼을 현장 사례 중심으로 보완하고 아동 보호 시설 등 인프라를 확충해야 제도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즉각분리제는 연 2회 이상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된 아동을 지자체의 정식 학대 판정 이전에 부모 등 가해 의심자와 떼어놓는 조치다. 이전에도 공무원, 경찰 등 현장 실무자 판단 아래 최대 72시간 동안 아동을 격리할 수 있는 응급조치 제도가 있었지만, 중장기 분리를 위해선 법원 승인을 따로 받아야 해 보호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즉각분리제는 지자체 전담공무원의 독자적 판단으로 시행할 수 있어 의사결정 문턱도 낮췄다.
즉각분리제는 이처럼 실무자 재량권을 강화해 아동 보호 조치를 보다 쉽고 빠르게 진행하고자 마련됐지만, 정작 현장에선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아동권리기반 아동학대 대응체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연구팀이 아동학대 대응을 담당하는 3개 직군(아동학대전담공무원, 학대예방경찰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24명을 인터뷰하면서 즉각분리제의 효과 및 한계를 묻자 모든 직군에서 "기존 응급조치와 구분이 어렵다"는 답변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연구책임자인 김미숙 한국아동복지학회 감사는 "굳이 즉각분리 조치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고 익숙한 기존 제도가 있으니 응급조치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 현장의 지배적 반응"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보고서에 실린 실무자들의 육성으로도 확인된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대부분 상황은 응급조치로 해결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자치구에선 한 번도 즉각분리를 시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학대예방경찰관은 "현장에서 어떤 분리 조치를 내릴지 명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실무상 즉각분리와 응급조치를 신속하게 구분하고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혼선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아동을 보호할 시설이 부족해 즉각분리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천의 학대전담공무원은 연구팀 인터뷰에서 "즉각분리를 시키면 아동이 쉼터에서 7일 이상 지내야 하는데 쉼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일단 72시간만 격리하는 응급조치로 선회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담공무원은 본보 인터뷰에서 "분리된 아동이 생활할 양육시설이나 인적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아이들이 쉼터 정원 초과로 거실에서 자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전국 학대피해아동 쉼터는 105개소, 일시보호시설은 13개에 불과하다. 정부는 쉼터를 2025년까지 240개로 확대할 계획이지만, 아동학대 사건에 있어 분리 조치가 적극 권장되고 실제로도 빠르게 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보면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학대 피해 아동을 주양육자로부터 분리해 보호한 사건은 2018년 3,287건, 2019년 3,669건, 2020년 3,926건으로 증가 추세다.
전문가들은 즉각분리제 안착을 위해 현장 판단 기준부터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미숙 감사는 "정인이 사건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일단 아동을 분리시키는 단호한 조치가 불가피하다"며 "다만 즉각분리 조치가 제대로 활용되려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모호한 현행 기준을 보완하고 학대 대응 인력과 아동 쉼터 인프라가 함께 확충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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