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 A씨, 50년 넘어 국가유공자 인정
명예수당 지급 개시 연령 한참 지났지만
소급지급 요청엔 "법률상 불가… 소송하라"
"유공자 법률 개정해 예우 수준 높여야" 지적
6·25전쟁 휴전 두 달여를 앞두고 군에 입대해 15년을 복무한 뒤 만기 전역한 A(88)씨. 지난해 11월 오래된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던 A씨는 함께 군 생활을 했던 전우의 이름을 발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반가운 통화를 이어가던 중 A씨는 상대방이 오래전 참전유공자로 등록했고 65세가 되던 해부터 '참전명예수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A씨는 뒤늦게 노구를 이끌고 관련 서류를 준비해 서울 은평구청과 서울지방보훈청에 참전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 병적 기록 검토 결과 참전 사실이 인정돼 유공자로 등록됐고, 대통령과 국가보훈처장 명의의 국가유공자 증서를 우편으로 받았다. 1967년 전역했으니 50년도 지난 뒤였다. A씨는 "참전유공자 등록 대상이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다"며 "이제라도 등록된 건 다행이지만, 수십 년 세월을 생각하면 나라에 섭섭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서운한 일은 또 있었다. 참전유공자 등록에 따라 국가보훈처와 서울시가 지급하는 참전명예수당을 받게 된 A씨는 유공자 등록 이전까지 소급해 수당을 받을 수 있을지 문의했지만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법률상 참전명예수당은 '신청주의' 원칙 적용 대상, 쉽게 말해 신청해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 가족은 문의 과정에서 '이의가 있으면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하라'는 식의 안내를 받았다면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에겐 아쉽게 느껴지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6·25전쟁 및 월남전에 참전한 국가유공자의 예우 수준을 높이고자 관련법을 개정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제도 설계나 운영 방식은 여전히 눈높이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원의 전제 조건인 참전유공자 등록이 여전히 개개인에게 맡겨진 데다가, 뒤늦은 등록으로 놓치게 된 혜택을 보상받을 길도 막막한 탓이다.
7일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참전유공자는 보훈처나 관할 지자체에서 매달 참전명예수당을 받고 있다. 참전유공자법이 2002년 개정되면서 마련된 혜택이다. 보훈처에서 받는 수당은 제도 시행 초기 월 5만 원에서 꾸준히 올라 올해는 35만 원으로 인상됐다. 전국 228개 광역·기초 지자체도 조례에 따라 월 10만~30만 원가량의 명예수당을 별도로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A씨 사례에서 보듯이 참전명예수당은 신청자에 한해서 지급된다. 현행법이 수당 지급 대상자를 '65세 이상의 참전유공자'로 규정하면서도 지급 연령이 지난 뒤에 참전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다면 신청한 달부터 지급한다는 단서 조항을 뒀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당 지급 근거 조항이 생긴 2002년 이전의 참전유공자 등록자는 수당 신청을 별도로 해야 했던 점을 감안하면, 수당을 받지 못하는 또 다른 사각지대가 있을 공산이 크다. 실제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전국 참전유공자 등록자 26만여 명 중 3,000여 명이 이런 이유로 명예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와 개선책이 마련되기도 했다. 서울시도 관련 조례를 개정해 올해부턴 직권주의로 참전명예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여태 유공자 등록이 안 된 참전용사가 적지 않을 거란 지적도 나온다. 당국은 미등록 참전유공자 규모를 가늠할 통계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다. 보훈처도 이런 문제를 의식해 2014년부터 참전유공자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대부분 고령이라 생사나 소재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태열(영남이공대 교수) 한국보훈포럼 회장은 "보훈은 유공자 인정부터 사후 보상까지 하는 제도로, 대상자를 적극 발굴해 보답하는 국가 책무적 기능이 함축돼 있다"며 "현행법에 있는 참전명예수당 지급 단서 조항을 삭제해 유공자 신청을 늦게 한 분들도 수당을 소급 적용받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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