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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 성 범죄 위험 노출된 '메타버스'...가상세계라 보호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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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 성 범죄 위험 노출된 '메타버스'...가상세계라 보호 더 어렵다

입력
2022.02.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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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관련 법, 제도 마련 자체가 쉽지 않아"
①이미지·언어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 많아
②메타버스 내 유사성행위 해석도 의견 갈려
③행동 주체가 사람 아닌 아바타라는 점도 복잡
"초동 조치부터 가상세계라는 점 감안해야"

10대 아동·청소년들이 메타버스 내 성범죄에 노출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10대 아동·청소년들이 메타버스 내 성범죄에 노출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아이가 유명 메타버스 플랫폼 내에서 대화하는 걸 우연히 봤는데 충격적이었어요.

탁틴내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 상담 내용 中

정희진 탁틴내일 팀장은 최근 청소년성폭력상담소에서 한 아이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성적 발언이 오가는 아이의 온라인 대화창을 보고 놀란 상태였다. 아이에게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며 가능한지도 물었다.

정 팀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당시 문의) 전화를 마치고 챙겨야 할 플랫폼이 하나 더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해당 메타버스 플랫폼을 디지털 성범죄 모니터링 대상에 추가했다. "(해당 플랫폼에) 들어가서 조금만 보고 있어도 음란한 대화라든지 성희롱적인 대화를 많이 주고받더라고요."

탁틴내일은 아동·청소년의 성매매·포르노그래피·인신매매 종식을 위한 국제네트워크의 한국지부다. 성폭력으로부터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돕고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상담도 진행한다. 탁틴내일 상담소 상담통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중 디지털 성폭력의 비율이 2016년 10.1%에서 2020년 49.6%로 증가했다. 아직 메타버스에서 발생한 성범죄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메타버스 내 성범죄와 관련한 문의가 늘고 있고 이에 따라 관련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메타버스는 현실세계처럼 사회·경제적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 말한다. 특히 MZ세대가 크게 호응하고 있다. 닐슨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메타버스 플랫폼의 이용자는 7~12세 50.4%, 13~18세 20.6%로 아동·청소년이 전체 이용자의 70% 이상이다. 성별로 봤을 때 여성 이용자가 전체 이용자의 77%에 달한다.


MZ세대가 열광하는 메타버스...성범죄로부터 안전한가

지난달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메타버스 매개 아동·청소년 성착취 현황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강선우 의원실 제공

지난달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메타버스 매개 아동·청소년 성착취 현황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강선우 의원실 제공

메타버스 이용자의 다수가 아동·청소년이지만 명확한 규제 방법이 없어 성범죄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범죄 현황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고자 지난달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메타버스 매개 아동·청소년 성착취 현황과 대응방안 토론회'도 열렸다.

토론회에서 정희진 팀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상앱, 채팅앱, 게임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발생했던 것들이 메타버스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며 메타버스를 통해 "온라인 성범죄가 확장되고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는 "메타버스 이용자의 상당수가 18세 미만 여성이용자인 만큼, 다른 SNS 서비스 등과 다르게 아동·청소년을 노린 성범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메타버스 매개 성범죄...처벌하기 쉽지 않아

판사봉. 재판, 판결. 게티이미지뱅크

판사봉. 재판, 판결. 게티이미지뱅크

현행법의 한계가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지현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태스크포스(TF) 팀장은 "메타버스 내 성적 폭력 및 괴롭힘은 성적 이미지를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뿐 아니라 언어를 매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어적 성적 폭력 및 괴롭힘은 통신매체이용음란죄 이외에 형법상 비(非) 성범죄인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만 다뤄진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는 해당 행위가 저속한 표현을 넘어 '음란물'의 정도를 충족해야 하며,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는 '공연성'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메타버스 내에서 성적 목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지는 행위를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메타버스가 현실세계를 닮은 가상세계이기에 유사성행위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신민영 변호사는 메타버스 내에서 피해자에게 캐릭터를 이용한 유사성행위를 요구해도 처벌이 어렵다고 말한다. "메타버스 내 유사성행위를 직접적인 성행위나 그와 유사한 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이라면 아동복지법에 의한 처벌이 가능하나, 가해자가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임을 알고 있었을 경우에만 가능해 몰랐다고 진술할 경우 처벌이 불가하다.

서지현 팀장은 "피해자들은 주변인들에 대한 신뢰 또는 일상생활의 안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는 등의 피해를 경험"하나 "성범죄의 특성을 고려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처벌의 공백이 발생한다"며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메타버스 내 성범죄… 변화에 따라 법률 공백 채워야

지난달 27일 열린 '메타버스 매개 아동·청소년 성착취 현황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진행 중이다. 강선우 의원실 제공

지난달 27일 열린 '메타버스 매개 아동·청소년 성착취 현황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진행 중이다. 강선우 의원실 제공

토론회 참여자들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가상세계가 등장한 만큼 법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메타버스 공간에서의 성범죄는 현실이나 온라인 성범죄와 비교했을 때 주체와 방법에 차이가 있다. 메타버스 내에서 행동 주체는 모두 다 '아바타'다. 성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사람의 모습과 흡사한 아바타로 표현되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법률은 '사람'을 직접 추행하는 것을 제재하고 있다. 디지털 표현물인 아바타는 보호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못하다. 국회 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 정준화 조사관은 만약 한 이용자가 메타버스 내에서 아동의 아바타를 성추행했다 하더라도 이 사건에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아동복지법'을 적용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사회와 기술의 빠른 변화에 맞춰 아바타를 대상으로 한 비신체적인 성범죄에 대해 입법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무부 서지현 팀장은 "온라인상 언어를 매개로 하거나 게임 캐릭터 등 피해자의 정체성을 대상으로 하는 비신체적 성폭력에 대해서도 법제화를 통해 성범죄로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를 포함할 수 있는 처벌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며 '성적 인격권'을 법률에 명시해 성적 인격권 침해 범죄를 신설하는 입법 방안을 제시했다.

성범죄 유형의 변화에 따른 제도적 공백을 채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n번방 사건 등 메타버스가 아닌 온라인에서 발생한 성착취 범죄는 영상물을 제작, 유포하는 방식으로 일어났다. 현행 법률 역시 아동과 청소년의 성착취물을 제작하거나 배포하는 자들을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메타버스 내에서는 실시간으로 범죄가 발생한다. 가해자가 별도로 영상물을 녹화해 배포하지 않는다면 법률 적용이 힘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조사관은 해당 문제제기와 함께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정 조사관은 "아동, 청소년이 메타버스에 들어갈 때는 녹화 기능을 탑재한 일종의 아이템을 착용하게 하는 것"이라며 "성범죄 사실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 녹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도 알게 되어 가해자들의 범행을 위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대응과 제도 정비에 대한 목소리도 나와

지난달 27일 열린 '메타버스 매개 아동·청소년 성착취 현황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진행 중이다. 왼쪽부터 정준화 국회 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 조사관, 서지현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TF 팀장, 이병귀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과 과장. 강선우 의원실 제공

지난달 27일 열린 '메타버스 매개 아동·청소년 성착취 현황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진행 중이다. 왼쪽부터 정준화 국회 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 조사관, 서지현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TF 팀장, 이병귀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과 과장. 강선우 의원실 제공

경찰의 초기 대응에서 '응급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신민영 변호사는 "메타버스상 범죄를 포함한 온라인 성착취물 문제는 적시 대응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며 "적어도 성착취물의 배포가 임박한 상황에서는 수사기관이 이를 제지하는 임시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지현 팀장도 그 필요성에 공감했다. 서 팀장은 "응급조치란 디지털 성범죄 피해 신고를 받거나 사실을 발견한 경우 사법 경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피해 영상물 차단이나 삭제 조치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피해자들의 생명과 신체에 직결된 문제"라고 언급했다.

경찰청 사이버 범죄 수사과 이병귀 과장은 응급조치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는 은밀하게 이뤄지고 익명성을 띤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경찰의 위장 수사 방법도 있기에 공개적으로 응급조치를 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 과장은 "오프라인상에서의 범죄 제지와 온라인상에서의 응급조치 효과는 다를 수 있다"며 "또 오프라인에서는 경찰관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어렵다. 가해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경고할 것인지 기술적 문제도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지현 팀장은 "해외에서는 지속해서 경고 문구를 남긴다"며 "가해자가 경찰임을 믿지 않더라도 두려움을 갖게 할 수 있다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메타버스 내에서 경찰 및 사법 서비스를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병귀 과장은 "메타버스 내에 파출소나 청소년 교실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경찰이 직접 순찰을 도는 등의 방법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9월부터 청소년성보호법상 경찰관임을 밝히지 않고 증거자료를 수집하거나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가장해 수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며 "아직 메타버스 내에서의 위장 수사 사례는 없지만 온라인 성범죄는 이러한 방법으로 범인을 검거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이버 범죄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서지현 팀장은 "범죄자들의 기술에 비해 우리의 수사력 개발은 굉장히 낮은 수준이다. 추적할 수 없는 기술이라도 장기간에 걸쳐 연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주는 사이버 안전국이 있다. 사이버 테러와 성범죄를 같은 선상에 두고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해서 장기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현 인턴기자
김세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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