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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문룡·원세개…필립 골드버그

입력
2022.02.04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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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땅에서 “후금 정벌” 주먹질 모문룡
갑신정변 진압 후 조선 내정간섭 원세개
주한 미 대사 내정 골드버그 공통점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된 필립 골드버그 전 미 국무부 대북제재 조정관이 지난 2009년 방한 당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 왕태석 선임기자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된 필립 골드버그 전 미 국무부 대북제재 조정관이 지난 2009년 방한 당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 왕태석 선임기자

1622년 명나라 말기, 모문룡이란 무장이 있었다. 후금의 태조 누르하치가 요동을 공략할 때, 그는 뜻밖에 조선의 평안도 철산 가도에 진을 치고 허세를 부렸다. 그러면서 당시 광해군에게 후금을 칠 테니 군량미를 내놓으라고 큰소리쳤다. 인조반정 이후엔 명나라의 책봉에 몸이 단 인조에게 자신의 연줄을 동원해 책봉 승인을 받아주겠다며 몸값을 올렸다. 약점이 잡힌 인조 정권은 모문룡이 일삼는 패악질 뒷수습과 접대 비용으로 국력이 고갈되는 상황에 처할 정도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비변사 등록). 그러면서 그는 요동 회복을 떠벌리고 다니며 후금을 자극했다. 급기야 후금 홍타이지는 1627년 자신들의 배후를 위협하는 모문룡 제거 등을 명분으로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광해~인조 연간 조선에 ‘차마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긴 모문룡은 결국 자국 장수 원숭환에게 참수됐다.

이홍장(왼쪽)과 원세개. 한울엠플러스 제공

이홍장(왼쪽)과 원세개. 한울엠플러스 제공

1882년 청나라 말기, 원세개란 무장이 있었다.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청나라 실력자 이홍장은 원세개를 하급 군관으로 출병시켰다. 군란을 평정하는데 작은 공을 세운 원세개는 흥선대원군을 군란의 ‘주범’으로 판단해 톈진으로 압송하는데 앞장섰다. 원세개는 2년 후 갑신정변 때는 김옥균 등 개화파로부터 고종을 구출해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이후 10년간 감국대신이란 감투를 쓰고 조선의 내정을 떡 주무르듯 했다. 청일전쟁 직전 야반도주한 그는 광서제의 개혁 파트너로 낙점받았다. 하지만 서태후에게 밀고해 광서제를 유폐시키는 등 배신의 정치로 권력을 농단했다. 그는 특히 신해혁명 후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퇴위시킨 뒤 손문으로부터 대총통직을 넘겨받았으나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는 등 혁명을 배신해 나라를 훔친 대도(大盜)로 오명을 남겼다.

2022년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 말기, 1년여 공석으로 휑하던 주한 미국대사직에 최근 ‘온기’가 감돌고 있다. 필립 골드버그 주콜롬비아 미 대사가 주한 대사로 내정됐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지명 절차를 진행 중이고, 우리 정부도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의 부임은 빠르면 5월, 한국 차기 정부 출범과 함께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남북관계 개선과 종전선언에 방점을 찍고 있는 문재인 정부와는 더 이상 대북 관련 메시지를 주고받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골드버그의 주특기가 ‘닥치고’ 대북제재라는 점이다. 그는 앞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북제재 조정관을 지내며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 이행업무를 총괄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의 주한 대사 내정이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 대응한 채찍이라는 분석이 자연스럽다.

지난 1월 14일 북한이 평안북도의 철로 위에서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평양=AP 뉴시스

지난 1월 14일 북한이 평안북도의 철로 위에서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평양=AP 뉴시스

미국의 노림수가 무엇이든 간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기반으로 한 대북정책은 역풍을 넘어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핵ㆍICBM 모라토리엄 폐기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북한과 추가 단독 제재안을 흘리는 미국의 강대강 충돌이 낳을 후폭풍은 도대체 누구의 몫일까.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화염과 분노’가 외려 바이든 정부에서 활활 치솟고 있는 느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불과 취임 1년 만에 총체적 외교 참사를 맞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사실상 내전상태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자국 상황에 발목이 잡힌 미국에 글로벌 리더십을 기대하기엔 무리다.

제20대 대선정국에서 전쟁이란 단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내린다. 공멸과 피를 부르는 리더십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줄은 몰랐다. 골드버그에게서 정묘호란과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모문룡과 원세개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최형철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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