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클라스 ‘권력의 심리학’
권력과 부패의 본질에 대해 탐구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격언의 증거로 제시되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1971년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건물 지하에 모조 감옥을 지은 뒤 열여덟 명의 대학생 참가자를 모집했다. 이들 중 절반은 ‘간수’로, 나머지 절반은 ‘죄수’로 무작위 배정했다. 우연히 지위가 정해진 것인데도 간수들은 곧 죄수들을 학대하기 시작했고 죄수들은 복종적인 태도를 보였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런데 2007년 미 웨스턴켄터키대 연구진은 이 연구에 중요한 함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짐바르도가 지역 신문에 냈던 모집 공고처럼 “감옥 생활에 대한 심리학 연구 참가자 모집”이라 쓴 공고와, ‘감옥 생활’이라는 단어를 빼고 단순히 ‘심리학 연구 참가자 모집’이라고 쓴 공고를 동시에 냈다. 그 결과 감옥 실험 광고에 자원한 사람이 일반적인 연구에 지원한 사람에 비해 더 높은 공격성, 권위주의, 권모술수주의, 자기도취증, 사회지배성을 보였으며 낮은 연민과 이타주의를 보였다는 것을 밝혀냈다.
‘감옥’이라는 단어를 광고에 넣은 것만으로 가학적인 학생 집단이 모인 이 결과는 권력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재고하게 만든다. 즉, 권력은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를 끌어당긴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심리학
- 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 서종민 옮김
- 웅진 지식하우스 발행
- 448쪽ㆍ1만8,000원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국제정치학과 부교수이자 정치 컨설턴트인 브라이언 클라스의 ‘권력의 심리학’은 이처럼 권력과 부패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진화학에 기반한 연구와 최신 사회심리학, 신경학, 행동경제학을 융합하며 여기에 저자가 직접 만난 권력자들과의 인터뷰가 사례로 제시된다. 저자는 벨라루스, 영국, 코트디부아르 등 세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권력의 정점에 섰던 수백 명과 인터뷰한다. 이를 통해 어떤 유형의 사람이 권력을 더 쉽게 가지며 어떤 시스템이 더 쉽게 부패하는지 파헤친다.
책이 대답을 찾아나가는 질문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더 악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어 있는가. 둘째, 권력은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가. 셋째, 왜 우리는 우리를 통제할 권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통제하게 놔두는가. 넷째, 부패하지 않을 사람에게 권력을 주고 그 권력을 공정하게 행사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내려진 결론은 권력에 이끌리는 성향의 사람은 분명 존재하며, 부패한 시스템이 부패한 권력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다른 희망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즉, 부패하지 않을 유형의 사람을 권력으로 인도함으로써, 권력의 필연적인 부패를 막을 수도 있는 것이다. “권력의 경향성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패하지 않는 권력자는 누구인가. 바로 그 자리를 가장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9장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부패하지 않는 권력을 설계할 구체적인 실천 전략으로 유용하다. △지원자 풀을 늘리고 선별 과정을 강화한다 △무작위 선출로 감독 기관을 구성한다 △사람들을 순환시켜 부당 거래를 방지한다 △결과뿐만 아니라 의사소통 과정까지 검토한다 △책임감을 자주, 강하게 상기시키는 장치를 만든다 △사람을 추상적인 존재로 여기게 두지 않는다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을 준다 △감독의 초점을 지배자에게 맞춘다 등이다.
책의 교훈은 명확하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고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좋은 시스템은 윤리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도덕적 집단을 만들 수 있다.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더 좋은 사람이 우리를 이끌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집중적인 노력과 적절한 개혁으로 무게추를 떠밀어, 권력을 추구하고 남용하고 부패하는 이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다른 이들을 초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수리하는 손은, 평범한 시민이자 주권자인 우리 것이다. 대선을 한 달 앞둔 지금 이 시점에 꼭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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