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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 폭염, 홍수... "열두 살 아이도 아는 기후변화, 어른들은 왜 모른 척하나"

입력
2022.02.10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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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가 우리 삶을 바꾼다]
<하>당장 바꾸자… 행동 나서는 미래세대

편집자주

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건 이제 더 이상 북극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의 밥상물가, 일자리,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면면을 총 3회로 짚어 봤습니다.


애비 달링이 이끈 2021년 9월 미국에서 벌어진 2,000여 명 규모의 대규모 기후 파업 시위. 달링 제공

애비 달링이 이끈 2021년 9월 미국에서 벌어진 2,000여 명 규모의 대규모 기후 파업 시위. 달링 제공


영국에서 기후변화 대응 시위를 이끌고 있는 단체의 이름이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이다. 이 단체의 시위 구호 중 하나는 '우리는 살고 싶다'이다. 환경운동단체가 절박함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지구가 너무 뜨거워지고 있는 건 맞으니 탄소 배출을 좀 줄이자고 주장하는 건 알겠는데 멸종이라니, 너무 지나친 호들갑 아닐까.

미래세대들은 딱 잘라 "아니다"라고 말한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대형산불, 사상 최장의 장마, 기록적인 폭염. 우리가 나고 자라면서 보고 겪은 것들이다. 건강한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기성세대가 누려 온 소소한 일상이 앞으로도 가능할지 정말로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청년 기후행동 단체인 '선라이즈 무브먼트(Sunrise Movement)'의 활동가 올리비아 클라크(24·Olivia Clark)의 단호한 지적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미래세대의 항변은 2019년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고 쏘아붙인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4)의 질타에서부터 증폭됐다. 툰베리의 질타는 청소년들의 글로벌 기후운동 단체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FFF)'을 낳았다. 이들의 선언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툰베리가 불씨였다면 우리는 들불이다.'

한국일보는 '들불'을 자처한 미국과 유럽의 청년 기후 활동가들을 서면 인터뷰했다. 독일에서 'FFF'와 그린피스 활동을 병행하며 활발히 기후운동을 펼치고 있는 15세 활동가 피오나(Fiona), 2019년 미국에서 2,0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등교 거부 시위를 이끈 그린피스 미국 사무소의 16세 활동가 애비 달링(Abbie Darling),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클라크다. 이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지금 당장 변하지 않으면 내일이 없다."

"12세 눈에 보이는 기후위기, 왜 어른들은 외면하나"


미국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기후활동가 클라크(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독일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FFF) 모임에서 발언하는 피오나, 미국에서 열린 2021년 9월 기후 파업 시위에서 연설 중인 애비 달링. 클라크·피오나·달링 제공

미국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기후활동가 클라크(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독일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FFF) 모임에서 발언하는 피오나, 미국에서 열린 2021년 9월 기후 파업 시위에서 연설 중인 애비 달링. 클라크·피오나·달링 제공



-기후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언제부터였나.

달링 = 극단적인 기후 현상부터 늘어가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기름 유출로 붕괴되는 작업 현장 같은 기사를 보며 걱정이 늘었다. 열두 살 때 내 눈에 보이는 명백한 기후위기를 왜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지 의아했다. 우리를 지켜 줄 거라 믿었던 지도자들이 미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 게 혼란스러웠고 화가 났다.

피오나 = 어머니는 그린피스에 후원하고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지구를 지키는 일은 우리 가족에게 언제나 중요했다. 열 살 때쯤 환경을 위해 행동을 취하는 게 얼마나 필요한지 처음 깨달았고 '그린피스 키즈'에 합류했다. 'FFF' 운동이 시작되면서 기후운동에 더욱 적극 참여했다.

-한국에선 '학생=공부'로 봐서 환경운동한다면 '스펙 쌓으려 한다'고 보거나 '별난 아이' 취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피오나 = 비슷한 부분이 있다. 우리 또래들은 그린피스 키즈에 가입을 다른 취미 활동과 같은 것으로 여겼다. 어른들 중 일부는 우리를 피곤하게 여기거나 그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래. 너희들은 아직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해. 좀 더 자라면 알게 될 거야"라며 말이다.

달링 = 처음엔 내가 잠깐 관심을 갖거나 유행을 쫓는 거라 생각하던 부모님도 내가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걸 보며 진정성을 인정하셨다. 친구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나를 '에코 워리어'라 부르거나 환경을 좋아하는 소녀로 보거나, 일부 친구는 '너무 나선다'고도 했다. 다른 몇몇은 '좋은 대학에 합격하려고 한다'고 짐작했다.


석탄 사용 반대, 투표 독려 캠페인, 공장식 축산 반대 시위 등 다양한 기후활동에 참여한 피오나. 피오나 제공

석탄 사용 반대, 투표 독려 캠페인, 공장식 축산 반대 시위 등 다양한 기후활동에 참여한 피오나. 피오나 제공


-그럼에도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클라크 = 기후위기로 인한 모든 피해와 불평등을 겪을 세대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난 이제 겨우 스물넷인데 건강한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소소한 일상은 손에 권력을 쥐고 행동할 책임을 가진 기성세대들이 너무나 당연히 누리던 것들 아닌가. 청소년 기후운동이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다.

피오나 = 어른들의 의사결정이 우리 미래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른들이 깨달아야 한다. 지금 어른들은 우리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 우리 앞 세대가 지구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구에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미래세대에 더 나은 지구를 물려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여야만 한다.

달링 = 기후위기가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우리 미래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리더들에게 변화를, 우리 목소리에 응답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전 세계 12억 명의 청소년들이 같은 메시지를 외친다면, 지도자들도 결코 무시 못할 것이다. 지금은 소리를 높여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 때다. 우리의 미래가 우리 손을 떠나기 전에,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을 위해 일어서야 한다.


미국의 청년 기후행동 단체 '선라이즈 무브먼트’ 활동가들이 지난해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미시온 돌로레스 공원에서 벽화를 칠하는 퍼포먼스를 위한 연습을 하고 있다. 클라크 제공

미국의 청년 기후행동 단체 '선라이즈 무브먼트’ 활동가들이 지난해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미시온 돌로레스 공원에서 벽화를 칠하는 퍼포먼스를 위한 연습을 하고 있다. 클라크 제공



-한국에서도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는 있다. 하지만 그 반향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미미하다. 좋게 봐서 '기특하다'는 정도다.

달링 = 어머니가 중국계라 아시아 문화에서 위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이 주축이 된 시민단체를 기성세대 지위를 존중하지 않고 위협하는 존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세대의 요구를 반영하는 쪽으로 문화가 변해 갈 것이다. 젊은 세대가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사라지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라 본다.

클라크 =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서울 출신이라 한국에 대해 많이 듣는다. 내가 한국 청년 활동가라면 학교나 관공서에서의 농성, 파업을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주목을 끌 것 같다. 한국은 기술 산업의 세계적 강국이라 디지털 세대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환경운동을 펼치는 것에서도 이점이 있다. 한국의 미디어 또한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지난해 방탄소년단(BTS)이 유엔 회의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연설한 것처럼 더 많은 한국 스타들이 기후위기에 목소리를 낸다면 정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피오나 = 빈도는 낮지만 여기 유럽에서도 기성세대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말만 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건 '행동'이다. 우리에게 '자랑스럽다' '기특하다'는 말 대신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구하기 위한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한국도 180만 명 움직이면 기후위기 대응 가능

이들의 주장은 괜한 게 아니다. 최근 국제사회는 그동안 써 왔던 '기후 변화(climate change)'라는 말을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 '기후 실패'(climate breakdown)'로 바꾸고 있다. 그만큼 기후위기가 급박해졌다는 얘기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18년 제48차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통해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기온 상승의 마지노선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오르지 않는 것으로 제시했다. IPCC는 그 온도에 도달하는 시점을 당시 2030~2050년으로 예상했지만 3년 만인 지난해 8월, 무려 10년을 앞당긴 2021~2040년 중 1.5도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는 수정 보고서를 내놨다.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다이앤 파인스타인 사무실 앞에서 시위하는 '선라이즈 무브먼트' 활동가들. 클라크 제공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다이앤 파인스타인 사무실 앞에서 시위하는 '선라이즈 무브먼트' 활동가들. 클라크 제공


-기후위기에 동의는 하지만,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클라크 = 기후위기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설득할 필요는 없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3.5%가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지지를 보내는 운동은 모두 목적을 달성했다. 한국 인구가 약 5,100만 명이니 성공을 위해서는 180만 명의 지지가 필요하다. 나는 이 수치가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청년 인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기후위기에 대해 배우고 신념을 확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데 집중하고, 절대 바뀌지 않을 사람들에게 시간을 낭비하진 말아야 한다.

달링 = 기후위기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생각은 우선순위를 잘못 매기게 되는 심리작용에 기인한 것이다. 지금 당장 지급해야 할 청구서에 적힌 금액을 더 중요한 문제로 봐서다. 지구가 파괴돼 우리 삶이 사라질 경우 청구서에 적힌 금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년 후 홍수, 지진, 태풍으로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없어지고 나서야 기후문제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인가. 기후위기는 내가 이사를 가거나 계절이 바뀐다고 해도 피할 수 없다. 세계 곳곳이 불타고 내 삶의 터전도 불타는 날이 오기 전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피오나 = 지난해 여름 독일에서는 끔찍한 홍수가 일어났다. 나는 이 같은 기상이변을 접한 사람들이 제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눈을 뜨기를 바란다. 많은 독일 사람들, 그리도 아마도 한국 사람들 역시 기후변화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거나 자기 삶과 아무런 영향도 변화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이미 여기에 있다. 지난해 여름과 같은 기상이변은 앞으로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애비 달링이 이끈 2021년 9월 미국에서 벌어진 2,000여 명 규모의 대규모 기후 파업 시위. 달링 제공

애비 달링이 이끈 2021년 9월 미국에서 벌어진 2,000여 명 규모의 대규모 기후 파업 시위. 달링 제공


-기후활동을 통해 달성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피오나 = 지구에서 좋은 인생을 사는 것,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다음 세대에게도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1.5도는 여전히 달성 가능한 목표고 우리에겐 0.1도를 위해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에 이 작은 온도의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달링 = 미래세대도 코뿔소, 판다, 코알라, 펭귄 그리고 내가 경험한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 생태계를 계속 볼 수 있도록 싸울 것이다. 기성세대는 우리에게 고쳐서 써야 하는 망가진 지구를 물려주었지만, 우리 세대는 미래를 살아갈 다음 세대에게 안전한 지구를 물려줄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클라크 = 지난 4년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싸워 오면서 정책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시민들의 힘을 통해 법을 만드는 것이 환경운동에 가장 큰 진전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내 최종 목표는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기후 입법'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윤태석 기자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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