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서 일할 때와 비교해 3배는 더 부지런해져
한국의 '빨리빨리'는 정확하고 효율적인 기술의 극치
한국인이 자국을 '나무(木) 나라'로 부른다 생각하기도
"새벽 5시에 버스를 탔는데, 사람들이 꽉 차 있었어요. 너무 놀랐어요. 한국이라는 나라의 진짜 모습을 본 것 같았어요."
2015년 한국에 온 절멍개래(32·Tsolmongerel)씨의 고백이다. 2012년에 관광 차 한국을 다녀갔을 때는 전혀 몰랐던 풍경이었다. 3년 후 다소 절박한 상황에서 한국을 찾았다. 몽골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뒤 오빠가 운영하는 물류회사에서 일했지만, 경기가 나빠져 외국에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한국행을 택했다. 처음 한 일이 아파트 입주청소였다. 새벽에 일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가면서 ‘이렇게 이른 시간에 버스를 타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으나, 뜻밖에도 만원 버스였다. 그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혹은 한국에서 일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왜 그래요?"
입주청소 아르바이트는 몇 달 만에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구했다. 몽골에서의 전공을 살려볼까도 생각했으나 결국 요리를 택했다. 그는 "설날에 만두를 빚을 때 혼자 밤을 새워 만두를 빚었던 게 생각나 요리가 나에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돌이켜보니 요리는 내 운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전국에 10여 개의 식당을 운영하는 식품회사에서 대리라는 직함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몽골에서 일할 때와 비교할 때 노동강도가 3배는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새벽 5시에 본 그 풍경처럼, 한국인들은 정말 부지런한 것 같아요. 그런데, 열심히 하는 만큼 보람도 더 큰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점은 '빨리 빨리'였다. 최대한 빨리 하는 데도 "너무 느리다"는 타박을 들었다. 원체 느직한 성격이기도 했다. 특히 말이 느렸다. 몽골 친구들이 "이 친구 말이 언제 끝나나 기다리자"는 농담을 했을 정도였다. 홀에서 넘어오는 주문을 주방에 전달하는 역할을 할 때가 있었다. "빨리 빨리 말해라"는 타박을 들어야 했다. 손으로 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식당 이모들에게 "빨리 빨리 하라"는 독촉을 들었다. 처음엔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왜 그래요"하고 볼멘소리가 저절로 나왔지만, 얼마 안 가 생각이 바뀌었다.
"이모들이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 하면서 가르쳐 주는 걸 그대로 따라해 보니까 너무 편하고 쉽고, 또 빨리 되더라고요. 한국의 빨리 빨리는 그저 서두르는 게 아니에요. 예술이에요."
"저에게 한국은 '나무 나라'예요"
한국에 와서 새로 생긴 습관도 있다. 등산이다. 몽골과는 다르게 곳곳에 산과 나무가 있어서 한국은 참 예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한국을 '나무(木) 나라'라고 부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부산에 있는 식당에서 일하는 식당 이모와의 대화에서 비롯된 오해였다.
"이모가 '나무 나라'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 한국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나무 나라라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 부산 아주머니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나무 나라 와가 요리도 척척 하고, 대단타"였다. "남의 나라에 와서 요리를 척척 해내니 대단하다"는 의미였다. 얼마 안 가 진의를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한국을 여전히 '나무 나라'라고 생각한다. 나무와 숲이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다음 목표는 자신만의 식당을 가지는 것이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갈비찜이다. 갈비찜 전문식당을 열어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아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국에 흩뿌려진 식당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메뉴도 짜고, 반찬도 새로 개발하는 등 다양한 컨설팅을 하고 있지만, 아직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요. 한국에서 배운 요리 실력에 몽골서 익힌 디자인 감각을 더해서 눈으로 맛보고 입으로 즐기는 갈비찜 식당을 꼭 차려보고 싶어요. 요리의 꿈을 꾸게 해준 ‘나무 나라’,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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