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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건축 현상설계처럼 치를 수 있다면

입력
2022.02.02 22:00
수정
2022.02.02 22:4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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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현대 문명사에서 좋은 건축이 완공된다는 의미는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수천 년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제다. 수천 년 전 경주의 건축이 오늘날 국제적 관광자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고 수백 년 전 조선의 건축들도 훌륭한 유산으로 그 역할을 한다. 스페인의 빌바오라는 도시는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빌바오 뮤지엄 완공 후 세계적인 도시로 거듭났다.

서구 사회에서는 도시를 설계하고 계획하는 과정에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마을의 가로등 디자인을 결정하는데 기둥의 두께를 가지고 여러 달 동안 논의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는 말을 지인으로부터 듣기도 했다. 어쩜 우리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또는 정해진 상황에 맞추고 끝낼 수 있는 결정을, 그들은 충분히 시간을 두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 자체가 오랜 역사를 이어온 수천 년 전의 건축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준비와 노력은 그래서 굉장히 신중하고 다양한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작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한적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찾기 위해 건축인들은 현상설계라는 제도를 고안해 냈다. 현상설계는 말 그대로 새 건축에 대한 선의의 경쟁 장으로 준비된다. 인간의 삶이 길고 유구하며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성 안에 놓여 있듯이, 그것을 담는 그릇인 건축 또한 복잡하고 다양하며 시간성과 관계성의 문제를 동시에 끌어안은 심오한 과정임을 알기에 하나의 건축물을 디자인하고 결정하는 과정은 녹록한 일이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건축은 타 장르에 비하여 가장 무거운 중력의 압박을 느끼는 작업이다. 한 번 지어진다면 돌이키기 힘든 거룩한 부담의 작업이기에 건축가들은 더욱 신중하고 섬세해야만 하는 직업이다.

그런 이유로 현상설계는 단순히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과정으로 머물지 않는다. 좋은 현상설계는 경쟁을 넘어 좋은 아이디어를 나누는 과정으로 거듭난다. 서구 유럽에서 있었던 유명한 현상설계의 경우, 세계적 건축가들이 모여 우수작을 선정하지만 선정작 이외의 작품들이 제안한 좋은 의견들을 수용해 실제 디자인에 적용함으로써 보다 발전적인 결과물을 도출한 사례도 여러 차례 있었다. 현상설계의 본 목적이 1등을 뽑고 독점적 기회를 주기 위한 법적 제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미래를 위한 가치를 만드는 작업임을 그들은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선거의 열풍 속에 놓여 있다. 역대 선거 중 가장 비난과 잡음이 많은 선거라는 오명하에 설 연휴를 보냈다. 선거는 투표권을 가진 성인남녀 모두가 5년마다 참여하는 국가 최대의 의견 집약의 장이다. 좋은 건축을 하나 선정하기 위하여 인내와 상생의 과정으로 결과물을 도출하였을 때 그 결과가 백 년 이상의 가치로 남듯이 선거 또한 국가적 사명을 바탕으로 좋은 가치를 공유하고 생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당락을 넘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들이 하나가 되고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이해하며 당선이라는 목적을 넘어 국민 모두가 이해되고 소통되는 장이 된다면, 5년마다 찾아오는 선거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유희의 이벤트보다 더 기다려지는 축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선한 경쟁이 우리의 가슴을 들끓게 하는 그런 날이 되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김대석 건축출판사 상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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