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 이민걸·이규진 2심 선고>
공모관계 불인정 땐 양승태 재판에도 영향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2심에서도 유죄 판단을 받았다. 다만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재판 개입 혐의의 유죄 근거가 됐던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법관 재판사무에 관한 '지적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최수환 최성보 정현미)는 27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실장에게 벌금 1,500만 원을, 이 전 상임위원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전 실장의 경우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지만 2심에선 벌금형으로 감형됐다.
'대법원장·행정처 지적권한'...1심과 다른 판단
이민걸 전 실장에 대해선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시도 혐의, 국민의당 국회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심리하는 재판부 심증을 알아내라고 지시한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됐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법재판소 내부 사건 정보와 동향을 수집한 혐의 등이 유죄 판단을 받았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재판 개입을 직권남용죄로 형사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지적 권한에 대해 1심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지적 권한은 특정 사건 재판 사무의 핵심 영역을 지적할 권한을 뜻하는데, 1심에선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이러한 지적 권한이 있기 때문에 그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장기미제사건 처리 지연이나 미숙한 재판으로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도 재판 독립을 이유로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가 판사를 상대로 어떠한 지적도 할 수 없다고 보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2심 재판부의 판단을 달랐다. 지적 권한이 인정되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법관의 모든 재판 절차를 상시 감독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이는 사법권 독립에 정면으로 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재판권과 사법행정에 관한 법령을 종합적이고 실질적으로 살펴봐도 지적 권한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에 속한다고 해석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2심 재판부는 이런 논리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두 사람의 공모 관계를 다수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양승태 임종헌 1심 재판 중
이민걸 전 실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사법농단' 혹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 14명 가운데 유일하게 유죄 판단을 받고 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2심까지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등 5명은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아직 1심 재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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