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대전 주거환경개선사업 현장선 흙 반출 작업만
전국 건설현장 사실상 셧다운... 중재법 처벌 1호 부담
적용 2년 유예 소규모 현장 공사 진행... 긴장감 역력
설 연휴를 이틀 앞둔 27일 오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최대 명절을 앞두고 근로자들의 얼굴엔 여유가 묻어날 법도 했지만 올해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작업 투입 전 매일 10분 이내에 끝나던 ‘위험 인지 예지 활동(Tool Box MeetingㆍTBM)’ 회의가 15분 가까이 걸렸다.
체조를 시작으로 건강 체크를 한 뒤 안전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되던 미팅이었지만, 1974년 창사 이래 처음 진행 중인 전사 특별 안전활동에 따라 ‘중대 위험요인과 표준작업절차 인지 여부 확인’ 시간이 추가된 탓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날 TBM에 참여한 직원들의 눈에선 비장함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창사 이래 최대 안전 점검
TBM에 참여한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사흘 전까지 끼임 사고로 사망자가 나와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무겁다”며 “시중에 현대중공업이 ‘처벌 1호’가 될 것이란 말까지 떠돌아서 돌다리도 두드리며 가자는 분위기가 작업 현장을 압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7년간 44건의 사고가 발생해 27명의 사망자와 59명의 부상자가 나온 울산이었다. 비슷한 시각 사내 방송 시스템에서도 각 사무실과 작업장에 현장 안전을 강조하는 경영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근 광주에서 일어난 아파트 붕괴 사고, 연초부터 이어진 사망 사고 여파 등으로 일찌감치 설 연휴에 들어간 건설, 산업현장도 많았다. 코크스 공장 신설 공사가 진행 중인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경우 “시급하지 않은 일이라 연휴 뒤로 작업 일정을 연기했다”는 게 사측의 설명이지만,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관계자는 “근본적인 안전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당장의 화만 피하려는 꼼수”라고 했다.
전국의 건설현장들은 이날 대부분 작업을 중단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곳이 있다 하더라도 위험도가 현격히 낮은 공사가 대부분이었다. 서울에서는 중구, 서대문구, 마포구 등 강북지역 내 대형 건설사의 시공현장에선 인부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간혹 눈에 띄는 인원들도 공사가 아닌 현장 정리 작업자였다. 마포구 내 한 오피스텔 건설 현장 관계자는 “정직원들은 오늘 안전교육을 받고, 내일부터 명절 연휴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건설현장, 사실상 전국 휴업
대전 지역 중견 업체가 시공을 맡아 전날까지 터파기 공사로 먼지와 소음을 일으키던 한 재개발 현장도 이날만큼은 달랐다. 위험해 보이는 작업은 보이지 않았고, 현장에서 파낸 흙만 밖으로 반출하는 작업만 이뤄졌다. 공사 현장 관계자는 “회사가 전국에서 진행 중인 70여 건의 공사를 오늘부터 중단했다”며 “소규모 작업만 이뤄지고 있고, 작업 간 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관리자, 신호수 배치 등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이날부터 무재해 100일 운동에 돌입했다.
반면 빌라, 저층건물 등 소규모 건설 현장들은 이날에도 정상적인 공사가 이뤄지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작업자들의 긴장감은 대규모 건설, 산업 현장의 근로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대전 구도심 전통시장 인근 건물 해체공사 현장에서 만난 업체 임원은 "사고에 대한 부담이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어 현장을 지키면서 안전사항을 계속 확인하고 있다”며 “작업자들에게 서두르지 말 것을 반복해서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곳곳에서 사고
법 시행에 앞서 대대적인 홍보와 업계의 교육이 있었지만, 영세 사업장엔 빈틈도 보였다. 서울 서대문구 한 빌라 건설현장 작업자는 “공기가 정해져 있어 하루라도 빨리 작업을 마치는 게 중요하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걸 들어보긴 했지만, 관련해서 별도 교육받은 건 없다"고 말했다.
사업자는 물론 근로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안전에 각별한 신경을 쏟은 날이었지만, 부산과 인천의 건설현장에서는 추락 사고가 이어졌다. 이날 낮 12시쯤 부산 온천동 이안동래센트럴시티아파트 공사장에서 외벽설치 작업을 하던 50대 인부가 2.5m 높이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고, 앞서 오전 9시 50분쯤 인천 송도동 한 상가 건물 공사장에서 50대 남성이 지상에서 6m 아래 지하 2층으로 추락해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
부산 지역 한 건설사 대표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조심한다고 해도 사고가 난다”며 “일단 사고가 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안전관리자 보직을 모두가 기피하는 데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해당 업무 인력 수요가 늘어 채용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