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촌에는 이야기가 쌓인다...서울 한복판에 있는 시골 동네

입력
2022.01.29 04:30
18면
0 0

<9> 북촌

편집자주

부부 소설가인 강보라 박세회 작가가 동네에 얽힌 사회 문화적 단편을 감성적 필치로 담아냅니다.


2015년 계동길 전경. 한국관광공사 제공

2015년 계동길 전경. 한국관광공사 제공


원서동에 이사와 출근한 첫날 저녁을 기억한다. 귀갓길에 안국역에서 내려 마을버스에 탄 후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처음 터졌던 건 볼링장이었다. “다음 정류소는 볼링장, 볼링장입니다.” 그 방송이 마치 주변 반경 10km 안에 볼링장은 이곳 하나밖에 없다는 선언처럼 들려 웃음이 새어나왔다. ‘정류소 이름이 볼링장이라니’라며 실없는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이번 정류소는 세탁소, 세탁소입니다”라는 방송이 나왔다. 아마 그때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을 것이다. 순간 그럴 리가 절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몰래카메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고개를 쳐들고 혹시 어딘가에서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가 없는지를 찾았다. 종로구 한복판에 있는 동네의 정류소 이름이 세탁소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세탁소 다음 정류장의 이름이 ‘빨래터’인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당황했을지를 상상해보라. “이번 정류소는 빨래터, 빨래터입니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모든 승객들은 볼링장 다음 정류소가 세탁소고 세탁소 다음 정류소가 빨래터인 데 별달리 문제가 없다는 듯 차분했다. 빨래터에서 내려 마을버스 정류소 간판에 쓰인 ‘빨래터’라는 세 글자를 확인하고 났을 때, 나는 좀 허탈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 “볼링장 다음이 세탁소고, 세탁소 지나면 빨래터가 나오거든? 거기서 내려”라고 말하면, 믿어 줄까? 실제로 나는 마을버스를 타고 우리 집을 찾은 친구들에게 몇 번이나 “빨래터가 정류소 이름이다”라고 해명을 해야 했다. 혹시 여기 시골인가?

대동세무고등학교에서 본 계동 풍경. 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대동세무고등학교에서 본 계동 풍경. 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맞다. 북촌은 촌이다.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 릭 데커드가 지구에 잠입한 인조인간 ‘레플리칸트’들을 제거하기 위해 추적하며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은 2019년이다. 13세의 소년 아이캔이 우주에서 조난당한 아빠를 구조하겠다며 우주선 갤럭티카호에 몰래 잠입하는 ‘2020 스페이스 원더키디’의 배경이 2020년이다. 그러나 인구 1,000만의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한복판 북촌에서 늦잠을 즐기다가 야채장수 아저씨의 확성기 소리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는 박세회 씨의 이야기는 2022년이 배경이다. 블레이드 러너까지 꺼낼 것도 없이, 쿠팡과 마켓컬리의 시대에 야채장수 아저씨가 웬말인가. 매일 오전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면 야채장수 아저씨가 트럭을 타고 우리 집 앞 골목을 지난다. 야채장수 아저씨가 이 동네에서 야채를 팔기 시작한 지는 벌써 20년. 이미 봉고차 한 대를 폐차했을 정도의 세월이 흘렀고, 그가 새로 장만해 타고 다닌다는 트럭 역시 그다지 새것 같아 보이지는 않을 만큼의 시간이 또 흘렀다.

이 야채장수 아저씨가 얼마나 유명하냐면, 한달 반에 한번 정도 찾는 동네 미용실에서 야채 트럭에서 파는 상품의 품질과 가격에 대해 동네 주민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질 정도다. 지난봄에 트럭에서 미나리를 사봤는데, 과연 대형 마트보다 싸더라는 이야기. 또 이번 겨울 시금치는 좋은 걸 골라왔는지 단맛이 끝내주더라는 이야기. 야채트럭이 아직 이 동네에서 성업하는 이유는 특수한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장사를 처음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원서동과 계동 일대에 슈퍼마켓이 다섯 개나 있었지만, 지금은 단 하나, 계동길에 있는 수연홈마트뿐이다. 그 가게는 원서동 주민의 입장에서 거리로는 무척 가깝지만, 심적으로는 꽤나 멀다. 특히 원서동 주민 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에게 그렇다. 계동길까지 가려면 원서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이 고개가 만만치 않다. 야채트럭이 지나는 시간이면 어디선가 보행보조기를 끈 할머님들이 아저씨의 트럭을 에워싼다. 이사 온 초기에는 야채 장수 아저씨의 확성기 소리에 짜증을 내며 강제 기상하곤 했지만, 언젠가 그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이후로는 트럭 소리가 들리면 냉장고에 대파가 남았는지를 살핀다.

원서동에서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계동을 잇는 원서고개. 높은 고개라는 뜻에서 '마루터기' 또는 '마루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원서동에서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계동을 잇는 원서고개. 높은 고개라는 뜻에서 '마루터기' 또는 '마루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촌에는 이야기가 쌓인다. 정류소 ‘세탁소’ 앞에는 가끔 문을 여는 럭키 세탁소가 있다. 아니, 어쩌면 사장님의 입장에선 가끔 문을 닫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험상 다섯 번 정도를 방문하면 두 번 정도는 잠겨 있었다. 문이 닫혀 있으면 전화번호가 붙어 있다. 전화를 걸면, 건너편 정육점 사장님이 나타나 대신 세탁물을 맡아준다. 세탁소 아저씨는 1977년에 럭키 세탁소를 인수해 전 주인이 붙여둔 럭키한 이름을 바꾸지 않고 40년 넘게 운영했다. 그는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세탁소 다음 정류장인 빨래터 근처에 살았다. 마을버스라 다음 정류장이라고 해봤자 고작 50m 거리다. 그의 옆집에 사는 김상궁 할머니가 그의 딸을 많이 예뻐했다. 김상궁 할머니는 궁에 온 사신들의 말을 기록으로 남기는 서기였다. 궁에서 나와 자식이 없던 김상궁 할머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같이 힘을 모아 장례를 치렀다.

이런 자잘한 이야기들이 2021년에 서울시 한옥정책과에서 엮어낸 ‘북촌의 시간’이란 책에 고스란히 적혀 있다. 이 책에 적힌 럭키 세탁소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그가 기업 다니는 회사원들보다 더 벌 때가 있었다. 원서동에서 율곡로를 건너면 익선동이다. 당시 낙원동에는 거대한 요정들이 성업 중이었는데, 이 요정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한복을 다리러 와서였다. ‘점심 먹고 5시까지 정신없이 한복을 다리던 시절’에는 당연히 주변에 다른 세탁소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내가 아는 바로는 계동에 두 개 원서동에 하나, 단 세 곳만 남았다. 사장님 몰래 나 혼자 이렇게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다 보니, 멀리서 럭키 세탁소 아저씨를 보기만 해도 반가운 마음이 든다. 결국 ‘정(情)’이라는 모호한 마음은 어쩌면 사람 간에 쌓인 이야기의 두께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1950~1970년대까지 계산한의원이 있던 계동 146번지 행랑채의 모습. 현재 왼쪽부터 카페, 꽃집, 초콜릿가게, 부동산, 문구점, 떡집, 장난감가게, 액세서리점, 옷가게가 입점해 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1950~1970년대까지 계산한의원이 있던 계동 146번지 행랑채의 모습. 현재 왼쪽부터 카페, 꽃집, 초콜릿가게, 부동산, 문구점, 떡집, 장난감가게, 액세서리점, 옷가게가 입점해 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몸을 누이고 자는 내 집의 이야기를 아주 멀리서 발견하기도 한다. 얼마 전 단골 미용실 원장님께 1980년대까지 계동과 원서동을 가득 메우고 있던 한옥 자리에 어쩌다 다세대와 다가구 주택들이 들어서게 됐는지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1990년인가, 1991년인가? 서울에 비가 참 많이 온 해가 있었어요.” 원장님이 말했다. “그때 재동초등학교 뒤쪽에 있는 노후된 한옥이 무너져서 일가족이 죽었어요.” 집에 돌아와 기사 아카이브를 찾았다. 1990년 9월 9일부터 12일에 걸쳐 한강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에 큰 비가 내렸다. 중국에 상륙해 있던 태풍 도트가 서울을 통과한 중위도 저기압과 연결되며 발달해 중부지방에 452mm, 서울지역에 486mm의 강우를 쏟아 부었다. 한강은 65년 만에 최고 수위를 기록했고, 18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163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집중호우가 한창인 11일 오전 6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재동초등학교 뒤쪽에 있던 한 한옥의 일부가 무너져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29대 가장의 일가족 3명이 숨졌다.

사실, 원장님께 묻기 전부터 원서동과 계동 일원에 있는 한옥들이 사라진 역사의 개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모든 개발이 철저하게 금지됐던 이 지역의 규제들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 건 1990년대에 들어서다. 1991년에 1층으로 규제하던 이 지역 주택의 건물 높이를 10m까지로 완화했고, 다시 1994년에는 16미터 5층 이하까지로 풀렸다. 이 시기에 많은 한옥들이 사라지고 숨 가쁘게 빨간 벽돌 빌라들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빨간 벽돌인 우리 집 건물 역시 이때 지어졌다. 그러나 빌라 광풍 시대 직전에 벌어진 참사에 관해서는 그날 처음 알았다. 오래전 신문엔 사망한 일가족의 이름과 나이, 지번 주소까지 숨기는 것 없이 적혀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가족들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 읽어봤다.

1969년 서울 북촌에서 개업한 중앙탕(왼쪽)은 목욕 문화의 변화와 24시 사우나에 밀려 차츰 잊히던 중 2014년 폐업했다. 현재 한 아이웨어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들어서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9년 서울 북촌에서 개업한 중앙탕(왼쪽)은 목욕 문화의 변화와 24시 사우나에 밀려 차츰 잊히던 중 2014년 폐업했다. 현재 한 아이웨어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들어서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라지고 생긴 것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청승을 떤다. ‘북촌의 시간’에는 1980년대 계동과 가회동 일대를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다. 40년 전 북촌에 있던 것들이 참 많이도 사라졌다. 현대갈비, 장안 낙지곱창, 명화 비디오, 이화 분식, 성희 사진관, 계동약국 등 수많은 가게들이 사라졌다. 종로속셈교육원, 재동태권도, 모차르트 피아노, 삼거리 상회도 모두 사라졌다. 오래된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 지금은 한 시간씩 줄을 서야 입장이 가능한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 잠봉뵈르로 샌드위치계를 평정한 소금집이 들어섰다. 최소아과의원이 있던 건물엔 내추럴 와인을 파는 비스트로 ‘이잌’이 성업 중이고, 30년 전통의 한정식집 ‘산내리’ 자리엔 카페 어니언이 자리를 잡았다. 왕짱구식당에서 파는 맛탕은 좀 더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저녁마다 계동떡방앗간에서 벌어지는 조촐한 술판도 오래 계속되면 좋겠다. 어니언도, 런베뮤도, 이잌도 노포 소리를 듣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최소아과 원장님께 진료를 받았던 누군가가 현대갈비와 산내리의 이름에서 반가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박세회 (소설가·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