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대형택배사 파업 겹치며 배달 지연 갈등
정자 서명 거부하자 택배기사 "수취 거부 간주"
택배업계 "물품 인수 절차, 구체적 규정 없어"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50대 김모씨는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습니다. 택배기사가 서명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씨에게 전달해야 할 물건을 도로 가져간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발단은 배달 지연이었습니다. 주문한 물품이 급히 필요했던 김씨는 예정시간이 지나도 배달이 이뤄지지 않자 택배기사 A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마음이 급했던 그는 택배를 직접 찾으러 가면 안되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A씨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배달 중이라니 금방 물건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그런데 A씨가 퉁명스럽게 답하면서 대화는 이내 감정 싸움으로 번졌습니다.
밤 10시가 다 될 무렵, 노란 조끼를 입은 누군가가 김씨 집 현관 벨을 눌렀습니다. 그 택배기사였습니다. 김씨 가족이 문을 열자 A씨는 택배 상자를 건네주며 운송장에 서명하라고 했답니다. 대충 사인을 하자 A씨는 이름을 정자로 쓰라며 다시 서명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평소와 다른 배달 방식이 의아했던 김씨 가족은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A씨는 "서명을 안 했으니 수취 거부로 간주하겠다"며 상자를 도로 빼앗아 되돌아갔습니다. A씨는 이후 김씨에게 문자를 보내 '앞으로 우리 택배사로 물건을 주문하면 인수자 확인 서명을 받고 배송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김씨는 결국 판매자에게 연락해 환불을 받았습니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택배사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비대면 배달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서명을 받고 물품을 인도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합니다. 실제 대다수 택배사가 자체 규정으로 준용하는 공정거래위원회 택배표준약관에도 '택배기사가 인수자에게 인도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포괄적 규정만 있을 뿐 인수 절차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진 않습니다. 규정을 핑계로 물품을 회수한 A씨의 행동이 무리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A씨는 뒤늦게 김씨에게 사과하면서 "배달이 밀려있는 상황에서 고객에게 항의를 받아 홧김에 서명을 요구했다"고 해명했다고 합니다. 설 연휴와 CJ대한통운 파업이 겹치면서 택배기사들의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가 심화된 건 사실입니다. 한 맘카페엔 지난달 21일 "다른 택배사 파업으로 일이 몰려 힘드신지 (택배를) 이렇게 열심히 던지고 갔다"는 글이 파손된 참치 캔 사진과 함께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김씨는 힘든 상황을 감안해도 택배기사의 태도는 잘못됐다는 입장입니다. 택배는 이제 필수적 일상이 된 만큼, 배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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