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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강요" vs "약자 배려"… 경비원 명절 떡값 갹출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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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강요" vs "약자 배려"… 경비원 명절 떡값 갹출 갈등

입력
2022.01.26 20: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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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업체가 처우 챙겨야" 복리후생비 항목 삭제도
김영란법 시행 이후 금품 제공에 대한 우려 커져
법조계 "공동주택관리법상 집행 절차 준수해야"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한 경비원이 청소를 하고 있다. 뉴스1.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한 경비원이 청소를 하고 있다. 뉴스1.

경기 용인시 소재 아파트에 사는 김진서(33)씨는 최근 동대표의 방문을 받았다. 설을 맞아 아파트 경비원과 미화원에게 상여금을 주려 하니 1만 원을 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 아파트 단지는 분기마다 명절상여금 조로 관리비를 더 받고 있지만, 김씨는 "우리 동을 관리하는 분들은 더 챙겨주려고 한다"는 동대표의 말을 물리칠 수 없어 돈을 냈다. 김씨는 "돈을 안 내면 현관문에 요청글을 붙이는 통에 표시가 난다"며 "선행을 강요받는 느낌"이라고 푸념했다.

아파트 용역업체 직원에게 지급하는 '명절 떡값'을 두고 입주민 의견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입주민대표 단체들은 관행이나 미풍양속을 들어 주민들에게 돈을 갹출하고 있지만, 상당수 주민들은 상여금 지급은 용역업체의 몫이라며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아파트 자치를 둘러싼 주민들의 민감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데다가,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사회 전반에 금품수수 관행에 대한 경계심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아파트에 따라 관리 직원들의 명절 상여를 챙기는 일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늘면서 관리비에서 용역업체 직원의 복리후생비 항목을 삭제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경기 안양시 소재 아파트 단지는 최근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관리비 항목 중 '설 격려금 지급'을 제외하기로 의결했다. 아파트 경비원·미화원 처우는 그들이 소속된 용역회사가 결정할 문제이지,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었을 뿐인 입주자대표회의가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민원이 다수 제기됐기 때문이다.

금품을 주고받는 관행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된 점도 이런 현상을 부추긴다. 명절마다 아파트 경비원 선물을 챙겨왔다는 안모(60)씨는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저렴한 선물을 주고받는 것에도 민감한 경우가 많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는 목적이라면 원하는 사람만 명절 선물을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명절 떡값이 형사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50여 가구가 사는 주상복합아파트 입주민 대표였던 A씨는 지난해 경비원들에게 명절 수당을 지급했다는 이유로 입주민에게 업무상 횡령죄로 고소당했다. 법원은 A씨에게 불법영득 의사가 없었음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수당 지급 과정에서 규약상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동주택관리법 제23조에 따르면 경비원·미화원 등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지급할 복리후생비를 관리비 항목으로 규정할 수 있지만, 해당 비용에 대한 회계 항목을 예산에 포함해 관리규약에 명시하지 않을 경우 관리비를 횡령했다는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경제적 취약계층이 많은 경비원, 미화원에게 명절 상여금을 주자는 선의가 모아질 경우 이를 관리규약에 반드시 명시하고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미란 주택관리사협회 자문변호사는 "관리비는 공적 자금이므로 공동주택관리법 및 관리규약에 예정된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횡령 혐의를 받을 수 있다"며 "용도를 관리규약에 명시하고 대표회의 의결 등 집행절차를 준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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