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조영빈 기자 험난한 중국 입국기]
동계올림픽 열흘 앞 긴박한 코로나방역
입국 전후 28일간 총 9번 초유의 PCR 검사
"안전올림픽 치르기... 애먼 외국인들이 부담"
“규정은 규정이다.”
지난 21일 베이징(北京) 남부 외곽 펑타이(豊臺)구에 위치한 격리시설. 방호복에 비닐 가운을 겹쳐 입은 중국 방역당국 직원은 차갑게 답변했다. 베이징에 입국한 외국인 대상 3주간의 의무격리 생활을 아내·8세 아이와 함께할 수 있도록 통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경직된 표정으로 "13세 이상은 1인 1실 격리가 원칙"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따로 격리된다는 어떠한 사전 통보도 받지 못했다. 외국에 온 어린아이가 말도 안통하는데 부모 보살핌을 받는 것은 상식"이라고 항변했지만 직원은 "예외는 없다"고 되레 목소리를 높였다. 더 얘기해봤자 비협조자로 낙인만 찍힐 듯한 분위기였다.
야속한 감정을 누르고 격리시설 입구에서 아내·아이와 '생이별'을 감수했다. 여기 저기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비슷한 처지의 다른 입국객들이 도처에 있는 듯했다. 동계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둔 베이징 당국의 서슬 퍼런 방역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실감했다.
한 달간 PCR 검사만 9번..."과한 것 아닌가"
베이징 당국은 최근 유전자증폭(PCR) 검사와 의무격리 기간 등 입국객에 대한 방역 수위를 대폭 강화했다. '간략하고 안전한 올림픽' 구호를 앞세워 방역에 만전을 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확산은 물론 오미크론 변이까지 베이징을 파고든 탓이다. 24일 기준 누적 확진자 25명을 넘어선 펑타이구는 주민 200만 명을 대상으로 핵산 검사를 시작했고, 확진자가 새로 발생한 차오양(朝陽), 시청(西城), 하이뎬(海淀) 등 10개 구도 방역요원 4,600명을 긴급 투입해 특별조치에 나섰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와중에 특파원 부임차 베이징에 입성하는 과정은 험난 그 자체였다. 인천-베이징 직항편으로 베이징 서우두(首都)국제공항에 발을 딛자, 입국장 한 켠에 빼곡히 들어선 PCR 검사소가 위압적인 기세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십 명의 의료진이 입국객들을 줄 세웠고, 마치 세관검사하듯 체온을 재기 시작했다. 중국정부 요구에 따라 불과 이틀 전 서울에서 PCR 검사를 통해 음성임을 증명했지만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당초 입국 전 한 차례의 PCR 검사만 요구했던 중국은 각국에서 오미크론이 급증하자, 17일부터 입국 일주일 전과 48시간 전 등 입국 전 PCR 의무 검사를 2차례로 늘렸다. 입국 뒤 3주간 의무격리 기간에 실시되는 6차례의 검사까지 합치면 '28일간 총 9번'의 검사를 받는 셈이다. 공항 검사소 옆에서 "올림픽도 올림픽이지만, 너무 과하지 않아?" 하는 다른 입국객의 푸념이 들려왔다.
PCR 검사와 입국 심사를 마친 뒤 중국 당국이 제공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때까지 누구 하나 어느 지역, 어떤 시설에 격리되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채 입국객들끼리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 "호텔이냐, 연수원이냐"는 불안한 대화가 오갔지만, 버스에 탄 수십 명 중 누구도 행선지를 알지 못했다. 창가 너머로 "베이징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올림픽 자축 간판들이 스쳐 갔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운했다.
방 떠나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격리'
버스로 1시간 30분가량 달려 3주간 격리될 연수시설에 도착했다. 먼저 N95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이 제공됐다. 입실 전까지 "절대로 벗지 말라"는 방역팀의 경고가 들려왔다.
입소등록을 마치자 격리시설 6층의 복도 끝 방으로 안내됐다. 17㎡(약 5평) 남짓한 공간에 침대와 노트북 하나 간신히 펴놓을 만한 탁자, TV, 휴대용 생수 40병, 수건 2장, 두루마리 휴지 10개가 있고, 일반 호텔방에 흔한 소형 냉장고나 욕조는 없었다.
방역팀이 제시한 '격리수칙'은 간명했다. △도시락 수령 시 이외 방문 개방 금지 △오전과 오후 매일 2회 체온측정 보고 △허가받지 않은 외부물품 반입 금지 등이었다.
특히 방역팀은 "각 방 문에 경보기가 달려 있다"고 단단히 일렀다. 공안 인력이 이를 통해 실시간 감시하고 있으며, 방 문 열고 외부로 나오면 3주 격리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감' 생활과 딱히 다를 바 없는 셈이다.
도시락 봉투에서 섬뜩한 냄새가…
내 방 문조차 열 수 없다는 갑갑함도 그렇지만 의외의 복병은 따로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콧잔등을 때리는 소독약 냄새다.
격리 이틀째인 22일 아침. 도시락을 수령하기 위해 방문을 열었더니, 도시락이 담긴 비닐봉투가 뭔가에 젖어 있었다. "물을 흘렸나?" 생각한 순간 섬뜩한 공기가 콧구멍에 빨려 들어왔다. 복도 바닥 전체가 소독약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바닥에 뿌린 소독약이 도시락 봉투에도 튄 모양이다. "플라스틱 용기에 밀봉됐으니 음식은 괜찮을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찜찜함까지 떨쳐내긴 어려웠다.
앞서 비행기 수하물로 부쳤던 배낭에도, 격리시설로 들어가는 내 뒤꽁무니에도 이들은 연신 소독약을 뿌려대고 있었다. 중국 당국이 캐나다에서 들어온 국제우편물로 오미크론이 전파됐다고 판단했다더니, '물 건너온' 사람과 물건 가리지 않고 소독하고 있었던 셈이다. 최근 의무격리를 마친 한 교민은 "'안전한 올림픽 치르기'를 위해 애먼 외국인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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