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에 물가 반영 임금 상승률 -2.4%
美 소매점 식품 재고율 역시 86%로 '뚝'
골드만삭스 "연준 금리인상 빨라질 것"
노동의 대가는 커졌는데 지갑은 되레 얇아졌다. 슈퍼마켓 매대는 텅텅 비어 빵 한 조각 구하지 못해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위세를 떨치는 미국의 현주소다. 인력난과 식품 공급망 위기, 꺾일 줄 모르는 물가상승(인플레이션)까지. 감염병이 불러온 ‘삼중고’가 삶의 현장과 노동 시장을 덮쳐 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미국 경제는 안갯속에 빠지는 분위기다.
23일(현지시간)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을 종합하면, 최근 미국 노동자들은 역대급 임금 인상이 무색하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4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극심한 인플레이션 탓에 실질 임금이 오히려 줄어든 까닭이다. 실제 지난달 물가를 반영한 임금 상승률은 -2.4%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7% 올랐지만, 물가가 7%나 뛰면서 임금 인상분을 상쇄한 결과다. 임금보다 물가가 더 빨리 올랐다는 얘기다.
더 많은 돈을 손에 쥐었지만, 쓸 수 있는 돈은 되레 줄어든 노동자들은 집세나 식료품 등 기본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위스콘신주(州) 밀워키 호텔에서 일하는 타이 스텔릭(23)은 WP에 “임금이 올랐지만 아무 의미가 없었다”며 “(높은) 임대료와 먹거리 구입을 감당하기 위해 여전히 가족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동료들은 두어 개 부업까지 하고 있지만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돈이 있더라도 먹거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미국 주요 식료품점인 트레이더 조, 자이언트 푸드, 퍼블릭스 매장 선반은 연일 텅 빈 상태다. 최근 식료품점들이 우유와 빵, 고기, 통조림 수프를 다시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CNN방송)는 보도도 나온다. 실제 이날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이 시장조사업체 IRI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 소매점 식품 재고율은 86%에 그쳤다. 감염병 이전은 물론, 델타 변이가 창궐한 지난해 여름보다도 낮다. 냉장고에 쟁여두기 쉬운 냉동 쿠키나 냉장 반죽 등의 재고율은 60~70%까지 곤두박질쳤다. 주요 먹거리인 돼지고기(-9%) 소고기(-5%) 닭고기(-4%)의 생산량도 줄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원흉이다. 감염 확산으로 농장이나 직장에 나가지 못하는 노동자가 급증, 곳곳의 생산력이 크게 떨어졌다. 물류업계 역시 인력난을 피하지 못해 공급망도 휘청거렸다.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올해 1월 10일까지 2주간 본인이 코로나19 확진 또는 감염자 돌봄을 이유로 직장에 출근하지 못한 노동자는 880만 명에 달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문제는 당분간 상황이 나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미크론 변이 기세가 쉽게 꺾이지 않으면서 인력난 해소는 난망이다. 장기전으로 이어질 경우 미국 내 식량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게다가 공급 부족은 미국 경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물가 상승을 부채질한다. 물가 압력이 커지면 기업은 제품 가격을 올리고, 노동자가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부른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선언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에 한층 속도가 붙을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연준의 통화정책 결정 기구)가 인플레이션 상황이 바뀔 때까지 모든 회의마다 일정한 긴축 조처를 원할 수 있다”며 “기존 예상보다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얇아진 지갑에 먹을 것 구하기도 힘든 서민들에게 이자 부담까지 가중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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