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가 매물 광고, 뒤에선 브로커가 중개
공인중개사가 무등록 중개 동조·방조해 근절 어려워
약사 A씨는 최근 약국을 차릴 점포를 물색하다가 서울 종로구 소재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온라인 사이트에 등록한 매물을 발견했다. 중개사무소 관계자와 약속을 잡고 점포를 보러 간 자리엔 예정에 없던 남성이 나와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중개 자격이 없는 브로커 B씨로, 해당 점포는 공인중개사가 아니라 B씨가 계약을 중개하는 매물이었다.
부동산 시장에서 무자격 브로커가 매매 중개에 나서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는 이들의 거래 주선은 그 자체로 불법일 뿐만 아니라 계약에 하자가 발생할 경우 구제받기도 쉽지 않다. 특히 이런 위법 거래의 상당수는 공인중개사를 내세워 합법을 가장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이런 브로커들은 지방 토지 매매나 약국 등 특수업종 점포 거래에 주로 개입한다. A씨 사례처럼 브로커가 중개를 알선하고 수수료를 받기로 한 부동산을 공인중개사가 취급하는 매물인 양 꾸며 매수자를 찾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이다. 일부 브로커는 계약서 작성도 공인중개사가 대행하도록 하면서 불법을 감추기도 한다.
브로커의 중개 행위는 거래 당사자에게 피해를 끼칠 공산이 적지 않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공인중개사는 고의나 과실로 거래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을 져야 해 무리하게 거래를 성사시키려 하지 않는 반면, 브로커는 중개수수료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아 무리한 거래까지 체결시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공인중개사를 통해 거래했다면 중개사협회 공제금으로 1억 원까지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지만, 브로커는 피해 변제를 민사소송에 의존해야 한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2단독 이동욱 부장판사는 12일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브로커 C씨에게 이례적으로 실형을 선고하면서 "공인중개사법에서 중개 자격을 요구하는 이유는 피해자 보호 때문"이라며 "공인중개인의 잘못으로 의뢰인이 피해를 입으면 공제금을 통한 변상이 가능하지만, 무자격자가 하면 보상받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일부 공인중개사들이 무자격자의 중개를 방조하거나 오히려 짬짜미를 하면서 불법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7월엔 공인중개사가 무등록 중개업을 방조한 혐의(공인중개사법 위반)로 1심에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3월 매물이나 거래자를 공인중개사에게 소개 및 알선해주는 브로커를 처벌하는 조항이 담긴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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