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빙서류 준비에 생소한 경제용어에 진땀
중·고·대학교 '실용 경제 교육' 필요 목소리도
'세테크'(세금 재테크)라는 말도 있잖아요. 미리 연말정산 공부도 하고, 나름 빠삭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전에서는 이해 안 가는 것 투성이예요.
입사 7개월 차 이 모(25, 서울 성동구)씨
'월세액'이 한 달 월세인지 납부한 월세의 합인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주위에 물어볼 사람도 없고 결국 회계 부문에서 일하는 전 남자친구한테 연락해서 물어봤다니까요.
입사 9개월 차 김 모(25, 서울 성동구)씨
추가로 입력한 항목에 대한 증빙서류가 따로 필요한 것을 뉴스 보고 알아서 뒤늦게 서류 준비 중이에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고 연말정산하다가 피눈물 나요. 정말.
입사 8개월 차 배 모(25, 서울 영등포구)씨
'13월의 월급'이라고 불리는 연말정산 기간이 시작되며 사회초년생들의 한숨이 늘고 있다. 항목은 알쏭달쏭하고 필요한 서류는 왜 이렇게 헷갈리는지 진땀부터 난다. 세금을 조금이라도 더 환급받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챙길 게 더 많다. '학교에서 가르쳐줬더라면 이 고생은 안 할 텐데' 하는 원망이 절로 드는 상황이다.
"증빙자료요? 도대체 뭘 제출해야 하죠?"
연말정산은 근로자라면 누구나 일 년에 한 번 거쳐야 하는 숙제와도 같다. 영수증 발급기관이 제출한 소득·세액공제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연말정산간소화 서비스'를 통해 자동 입력되는 항목이 대부분이지만 직접 입력해야 하는 항목도 있다. 사회초년생들은 증빙서류를 직접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독립한 사회초년생의 경우 가장 대표적인 항목은 '월세액'으로, 본인이 직접 임대차계약서 사본, 주민등록등본, 월세송금증빙서류 등 자료를 챙겨야 한다. 배 모씨는 "처음엔 증빙 서류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몰랐다"며 "아버지에게 여쭤봤는데 월세액과 신규 입사자 관련 항목은 잘 모르시더라"고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김 모씨 또한 "인터넷 검색하고 물어 물어서 월세액 증빙자료를 제출하긴 했는데 나중에 누락된 자료가 있다고 연락 올까봐 무섭다"며 "사실 지금도 맞게 한 건지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주택청약저축의 경우에도 미리 은행에서 '무주택확인서'를 등록해야만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이 사실을 몰라 놓치는 경우도 많다.
경제학 전공자도 "실전은 이론과 달라 어려워"
연말정산에서 쓰이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이나 '주택자금차입금원리금상환액' 등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용어들이 연말정산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배 모씨는 "처음엔 소득공제와 세액공제의 차이조차 몰라서 혼란스러웠다"며 "분명 한국말인데 이해가 가지 않아 새삼 경제에 무지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경제 관련 전공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금융계 회사에 재직 중인 이 모씨는 "경제를 공부해도 이론적으로만 알지 실제로 하려니까 생각보다 더 어렵다"며 "과세표준을 전공 강의에서 배웠는데도 실제로는 어떻게 적용되고 세액이 산출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공통적으로 연말정산에 대해 아무도 명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나 제도가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회사와 국세청 모두 자세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도움을 빌리거나 지인에게 물어 해결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부정확한 정보가 많아 실수하기 십상이다.
이 모씨는 "산출된 카드 사용액이 이해가 안 가서 같은 부서의 선배들에게 묻다가 회사 노경협력팀까지 갔다 왔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며 "자동으로 입력된 항목이 어떻게 산출된 금액인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어서 알 수가 없다"고 연말정산 시스템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생활과 연계된 실용 경제 교육 필요해"
사회초년생들은 이러한 어려움이 실용 경제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일상과 연계된 경제와 금융에 대해 배우지 못한 채로 사회인이 된다는 것이다. 배 모씨는 "학교 다니면서 경제 원리가 아닌 실용적인 경제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며 "이런 게 정말 공교육과 대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모씨 또한 "대학교에서 연말정산 방법이나 대출 종류, 금리 등 실생활에 필요한 금융상식을 필수교양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용 경제·금융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에서 운영하는 '경제배움e' 사이트에서는 '생애주기별 경제교육'의 학습 자료와 강의를 무료로 제공한다. 생애주기마다 실생활에 필요한 경제 학습을 지원하는 것이다. 청년기 과정에서는 대출의 종류와 한도, 금리뿐 아니라 노동권, 재무설계, 신용 관리 등을 학습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도 2016년부터 '대학 실용금융' 강좌 개설을 지원하고 있다. 각 대학교에서 강좌 개설을 신청하면 금융감독원에서 교수·교재·온라인강의 영상 등을 무료로 지원해준다.
하지만 이런 교육을 찾아 듣고 활용하는 이들은 드물다. 연말정산처럼 개인별로 다른 상황에 얼마나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때문에 사회 교과의 일부, 또는 선택과목으로 실용 경제 교육을 방치할 게 아니라, 학창시절부터 필수교과로 가르쳐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