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
문예지, 신문 창간호 등 2,500여종 소장
2002년 '수필사랑' 등 수필전문지 다수 창간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하는 테마수필 시대 열릴 것"
"창간호에는 당대의 문화적 상황과 시대 의식이 강렬하게 담겨 있습니다."
대구 중구 명륜로 향교 맞은편에 자리 잡은 한국수필문학관은 잡지 '창간호의 보고'라는 별칭이 붙었다. 각종 문예지와 잡지를 비롯해 신문 창간호까지 소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현대문학'과 '문학사상' 등의 문예지와 '뿌리 깊은 나무', '객석' 같은 예술 잡지는 물론이고 각 대학의 논문집 창간호, 세계일보 문화일보 한겨레 신문 창간호까지 찾아볼 수 있다. 종류만 해도 모두 2,500종에 이른다. 홍억선 수필문학관 관장은 "2호, 3호도 크게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잡지 창간호에 실리는 창간사에는 창간 취지와 목적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는 그 시대의 의식과 정서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2호, 3호만 해도 처음의 분위기가 희석되기 마련입니다."
전문 분야가 수필인 만큼 수필 전문지 창간호에 대한 애정이 깊다. 홍 관장에 따르면 1938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전문지 《박문》이 나왔지만 5호를 발행하고 사라졌다가 60년대에 이르러 뒤를 이어 전문수필지 《수필》이 창간되었다. 창간일은 1961년 4월1일이다. 재미있는 건 창간호에 일본 동경에 관한 수필 4편이나 실렸다는 점이다. 홍 관장은 "밉지만 이웃이고, 이웃을 알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창간호에 일본에 대한 특집을 마련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한다.
2004년 '수필세계' 창간
문예지 창간에 관한 한 홍 관장 본인도 이력도 만만찮다. 2002년 대구에서 동인지 '수필사랑'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문예지 계간 '수필세계'과 아카데미 문집 '수필창작'을 창간했고, 2005년에는 '경주수필', 2011년 '에세이 울산', 2018년 '한국에세이포럼'을 창간했다. 2021년에도 평론 성격의 '수필창작과 비평'을 창간했다. 한 개인이 이토록 숱한 창간 기록을 쏟아내고 발간을 계속 이어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홍 관장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는 수필시대였다"면서 "그 시대의 흔적이 이런 숱한 수필전문지 창간이라는 흔적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에 들어 아파드 단지가 형성되면서 전반적으로 생활이 편리해졌습니다. 가사노동에서 자유로워진 전업주부들이 대거 문화예술 부문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수필 전성시대가 열린 배경입니다. 서울에서 시작해 대구로 내려온 흐름이었죠.'
홍 관장은 2000년부터 수필 강좌를 개설하였다. 수필강좌의 인기는 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지역 도서관에서 20명을 계획하고 강좌를 열었는데 97명이 수강신청을 했다. '수필가'들이 쏟아져 나왔다. 현재 대구지역의 수필가들은 600여명 가량으로, 2000년 이후 20년 동안 400여 명이 수필가가 나왔다.
"그 즈음엔 소소한 삶을 표현한 가족사 수필이 주류였습니다. 수필을 통해 가슴에 쌓인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자기 위안을 통해 마음 치료를 하던 서정수필의 시절이었습니다."
수필가들이 저변확대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수필가들이 활동할 장을 마련하는 것도 수필 지도자들의 몫이었다. 현재 전국에서 25종의 수필문예지가 발간되고 있다.
수필가들의 변신도 다채로웠다. 시작은 자기 표출과 치유였다면, 수필가로서의 프로필을 발판 삼아 방과후학교 교사, 독서치료사, 다문화 한국어교사 등 수필가들이 다양한 직업군으로 진출했다.
2015년 한국수필문학관 개관 "수필인의 집"
2010년 들어 홍 관장은 새로운 목표로 부산했다. 2004년 수필세계 창간 모임에서 수필가들 사이에서 "수필문학관을 건립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때는 당연히 서울을 염두고 한 논의였다.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그 논의를 실행하는 지역도, 추진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홍 관장은 "공론(公論)이 공론(空論)이 되는 것은 신의의 문제"라면서 대구에서의 건립을 모색했다. 결국 2014년 중구 봉산동에 부지를 확보하였다.
현재의 수필문학관 자리는 3층짜리 산부인과 병원이 있었던 곳으로 여성지에서 '전국에서 알아주는 명당'으로 여러 번 취재가 있었던 건물이었다. 주인을 만나 수필문학관 설립 취지를 이야기하자 흔쾌히 땅과 건물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주었다. 주인은 "가문이 흥한 곳인 만큼 좋은 시설을 짓는 곳에 팔고 싶었다"고 밝혔다.
수필가들의 기대와 열망 속에 2015년 전국 최초의 수필문학관인 한국수필문학관이 개관했다. 한국수필문학관은 본관 3층과 별관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지 580㎡, 연면적 660㎡의 아담하지만 알찬 규모이다.
한국수필문학관 3층은 문학 분야는 물론 각종 문화예술의 전시 세미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2층은 다목적 강의실로서 다양한 인문강좌가 진행되고 있으며, 자료실은 대구수필작은도서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수필문학관은 수필자료를 어디엔가 모아두어야 하겠기에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자임한다. 이에 전국에서 발간되는 수필전문 문예지와 수필동인지, 개인 수필집 등 5만여 점의 수필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특히 문예지 창간호 400여 권과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각종 문화예술 분야의 창간호 2,500권의 소중한 문화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수필문학관이 창간호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창간호를 보내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혼자 보관하는 것보다 문학관에 소장을 하면 훨씬 더 안전하고 오래 보관할 것이란 믿음이 있다'고 하더군요. 귀한 책들입니다."
수필문학관에서 2016년에 제정한 '김규련 수필문학상'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수필가 김규련은 '거룩한 본능'으로 일반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홍 관장은 대구에 "이상화 시문학상, 김성도 아동문학상, 현진건 소설문학상은 있는데 수필은 문학상이 없는 게 아쉬웠다"면서 수필문학상의 제정으로 "좋은 수필가들이 조명 받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자부했다.
창간호 전시회 기획
홍 관장은 이제 수필은 서정을 넘어 테마로 넘어가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감성수필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수필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겼다"면서 "앞으로 수필은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하는 테마수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제 수필은 밭입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와서 씨를 뿌리고 싹을 튀우길 바랍니다. 꽃 같은 수필도 아름답지만 나무나 풀을 닮은 수필까지 다양하게 나와서 테마수필이라는 큰 숲을 만들기를 소망합니다."
2022년 코로나19가 숙지면 수필문학관도 사람을 불러 모으는 전시를 시작할 계획이다. 내년 6월부터 3층 전시장에서 ‘잡지 창간호 전시회를’를 열 계획이다.
"코로나19로 일상과 경제가 잔뜩 움츠러들었는데, 창간호에 담긴 그 시대의 강렬한 에너지가 지역 사회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비장하고 활활한 시대 기운을 경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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