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조모 살해 사건 선고...재판부, 책·편지 선물
재판부 "범행 나쁘지만 교화개선의 여지 있어"
"이 책을 읽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20일 오전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33호 법정. 선고를 마친 김정일 부장판사는 뒤돌아 나가려는 10대 피고인 2명을 다시 불러 세웠다. 김 판사는 “책과 편지를 준비했다”며 “박완서 작가의 ‘자전거 도둑’이라는 책인데 꼭 읽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책을 선물 받은 이들은 친할머니가 잔소리를 한다며 흉기로 60여 차례 찔러 살해한 A(19)군과 범행을 도운 동생(17)이다. 부모를 대신해 9년 간 자신들을 키워준 할머니를 그렇게 저세상으로 보낸 형제는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내 책과 편지를 건네 받은 뒤 품에 안고는 뒤돌아 나갔다.
책 자전거 도둑은 고 박완서 작가가 쓴 6개 단편을 모은 동화책이다. 책의 첫 번째 이야기인 자전거 도둑 편은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어른들 속에서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담겼다.
김 판사는 선고 전 양형 이유를 설명할 때 여러 차례 교화 가능성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비가 오면 장애가 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우산을 챙겨 나갈 정도로 피고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할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죄는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매우 무겁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부모의 이혼과 잦은 양육권자의 교체, 어머니의 폭행,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 등 불우한 환경 탓에 어린 시절부터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며 미래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누락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별다른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원만하게 학교 생활을 해 온 점을 보면 교화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여겨진다”며 존속살해로 구속기소된 A군에게 징역 장기 12년, 단기 7년을 선고했다. 또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과 80시간의 폭력 및 정신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범행을 도운 혐의(존속살해 방조)로 구속기소된 동생 B군에게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판결한 데 이어 40시간의 폭력 및 정신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A군은 지난해 8월 30일 오전 대구 서구 거주지에서 함께 살던 친할머니가 잔소리를 하고 꾸짖는데 격분해 흉기로 60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현장에 있던 할아버지까지 살해하려다 B군의 만류로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B군은 할머니의 비명이 외부로 새지 않도록 사전에 창문을 닫는 등 범행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A군에게 무기징역을, B군에게는 장기 12년, 단기 6년형을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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