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접근을 제약하는 검푸른 장벽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펼쳐진 중요한 공간이다. 역사의 중요한 무대이며 인류 역사의 발전을 촉진한 모터다. 인류의 역사를 공정하고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반드시 바다를 고려해야 한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누구나 바다가 일상을 떠받치는 생명줄이라는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한다. 석유부터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물자가 바다 건너에서 온다. 국내 수출입 물동량의 99.7%, 세계 교역량의 90%가 해로를 거친다고 하니 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할 테다. 주경철 교수가 해양사를 집대성한 최근작 ‘바다 인류’에서 바다의 관점으로 인류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배경이다. 지구 표면의 71%를 덮고 있는 바다에서 벌어진 일들을 빼놓고선 인류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고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다는 문명과 문명이 맞부딪치고 뒤섞인 공간이자 세계의 비약적 변화를 끌어낸 공간이다. 교역과 전쟁, 이민의 무대였다. 주 교수는 그러한 사건들이 인류사의 초기부터 벌어졌다고 강조한다.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나타나 수만 년 전부터 지구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과정에서 해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초기 인류는 빙하기에 아시아 남부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으로 이동했다. 바다가 얼어붙으면서 수심이 낮아지자 흩어진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서 항해해 나아갔다. 약 6만5,000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와 주변 섬들에 살게 된 원주민들이 바로 애보리진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간 사람들은 아메리카원주민의 조상이라는 의미에서 고(古) 인디언이라고 불린다. 기존의 학설은 이들이 빙하기로 땅이 드러난 현재의 베링해협을 거쳐서 유라시아 대륙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다고 설명하지만, 바다를 주요 경로로 지목하는 학설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북태평양 연안을 따라서 형성된 켈프(바닷말의 일종) 지대를 따라서 인디언들이 이동했다는 학설에는 ‘켈프 하이웨이(고속도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나아가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입한 인류가 해안을 따라서 남아메리카로 퍼졌다는 연구들도 많다. 조개류와 어류부터 바닷새까지 생물자원이 풍부한 연안이 인류의 주요한 이주 경로였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인류가 지구상의 모든 지역으로 확산하는 움직임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사람들의 거대한 해양 이동으로 거의 매듭지어졌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중국 남부와 타이완에서 기원해 기원전 3,500~3,000년경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향해서 대규모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여정은 통가와 사모아를 거쳐 태평양의 이스터섬에서 막을 내린다. 이스터섬은 가장 가까운 핏케언 제도로부터 1,600킬로미터, 남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도 3,2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외딴섬이다. 과학과 역사학이 발전할수록 유럽인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서사는 초라해진다.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말은 교과서에서 사용하지 않는 구식 용어다. 주 교수는 “그것은 세계사의 큰 흐름을 (유럽 중심의) 편협하고 편향된 시각으로 정리한 용어”라고 잘라 말한다.
‘바다 인류’는 본문만 833쪽에 달한다. 자료와 문헌의 출처를 정리한 부록까지 합치면 분량은 975쪽으로 늘어난다. 초기 인류의 전파경로로 시작된 이야기는 페니키아, 페르시아, 로마 등 지중해 문명의 역사를 거쳐 인도양을 중심으로 해상 실크로드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슬람권의 형성과 팽창, 몽골은 물론 명나라의 남해 원정과 해상에서의 후퇴로 이어진다. 지중해 세계의 분열과 바이킹의 팽창, 제국주의 시대, 인류가 바다를 ‘재발견’한 계기인 범선의 최전성기와 증기선 발명도 다뤄진다. 주 교수는 바다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군사적 대립, 해양자원의 미래를 언급하며 이렇게 강조한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바다에서 찾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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