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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명령에 명예로 맞선 '꼿꼿한 화살'

입력
2022.01.24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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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피시백(Ian Fishback, 1979.1.19~ 2021.11.19)

미 육사출신 공수-특수작전부대 장교 이언 피시백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자행된 구금자 고문 등 가혹행위 실태를 실명으로 폭로, 2005년 '구금자 처우법(일명 피시백 법)'을 제정하게 한 주역이다. 그는 17개월간 군 내부에서 공식 절차를 밟아 불의에 항변했으나 국방장관의 의회 해명과 군당국의 공식조사에서도 거짓과 은폐가 반복되자 내부고발을 감행했다. Rutgers University

미 육사출신 공수-특수작전부대 장교 이언 피시백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자행된 구금자 고문 등 가혹행위 실태를 실명으로 폭로, 2005년 '구금자 처우법(일명 피시백 법)'을 제정하게 한 주역이다. 그는 17개월간 군 내부에서 공식 절차를 밟아 불의에 항변했으나 국방장관의 의회 해명과 군당국의 공식조사에서도 거짓과 은폐가 반복되자 내부고발을 감행했다. Rutgers University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이란 말은 9.11 사태 직후인 2001년 9월 20일 조지 W. 부시의 의회 연설로 공개 정치무대에 처음 등장했다. 부시는 "미국의 적은 극렬 테러리스트 조직과 그들을 지원하는 모든 정부다. 테러와의 전쟁은 알카에다를 상대로 시작되지만, 지구상의 모든 테러집단을 찾아내고, 저지하고, 궤멸시킬 때까지 이어질 것"이란 말로 두 차례 열띤 갈채를 받았다. 약 한 달 뒤 '미국 자유법(USA Freedom Act)'을 대체한 저 악명높은 '미국 애국자법(USA Patriot Act)'을 발효시켰고, 무인 폭격을 앞세운 헤아릴 수 없는 반테러작전에 병행해 2002년 1월 쿠바 관타나모수용소의 문을 열었고, 이듬해 3월 이라크전쟁을 시작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21세기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서막을 열며, 9.11의 공포와 응징의 당위로 헌법과 자유-인권의 건국이념을 압도한 구호였다.

관타나모수용소의 기소-재판 없는 연행-구금-고문의 실태는 국제적십자회 등에 의해 2004년 초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CBS 시사프로그램 '60 Minutes'가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군 교도소 헌병들의 포로 학대 장면을 보도한 것도 2004년 4월이었다.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는 그해 5월 7일 의회에 출석해 '불한당(rogue) 같은 일부 헌병이 저지른 일탈 행위'라 해명했다. 국방부는 군인 및 군무원 17명을 해임했고, 군법회의는 7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미 육군 제82공수사단 519정보대대 이언 피시백(Ian Fishback, 1979.1.19~2021.11.19) 중위(당시)는 럼즈펠드의 저 의회 연설 방송을 이라크 팔루자 인근 머큐리 캠프(Mercury Camp)에서 시청했다. 현지에서12명 공수부대원을 이끌며, 아부그라이브 스캔들보다 더 끔찍한 고문과 가혹행위가 '불한당 같은 일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대장과 군법무감의 지시-묵인하에 상시적이고도 조직적으로 자행돼왔음을 누구보다 잘 알던 그였다. 그는 비인도적 가혹행위가 유엔 제네바협약과 미군 야전교범(Field Manual) 위반이며, 자신이 졸업한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의 생도명예규범(Cadet Honor Code)에도 반한다며, 그 명령의 근거가 무엇인지 납득시켜 달라고 지휘계통을 밟아 1년 넘게 요구해온 터였다.

그는 국방장관의 '불한당' 발언에 모욕감을 느꼈고, 아부그라이브 하급 병사들을 희생양 삼아 책임을 회피하려는 장관과 군 지휘관들의 저열함에 분노했다. 부대장(중령)은 문서로 작성한 그의 항변에 "피시백 중위의 문제의식을 숙지했다"며 날짜(2004.5.10)와 함께 서명까지 해서 그에게 건넸다. 그의 항변과 요구는 지휘계통을 따라 더 위로 상원군사위원회까지 줄기차게 이어졌다. 소속 사단 기지인 노스캐롤라이나 '포트 브래그(Fort Bragg) 군 감찰관은 '언론과 접촉하는 등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 국방부 공식조사 결과를 기다리라'고 조언했고, 어떤 이는 '타협점(gray areas)을 찾아보라'고도 했다. 군 수감자 가혹행위 공식 조사 책임을 맡은 앨버트 처치 육군 준장은 2005년 5월 "군이 승인한 심문 기술과 구금자 가혹행위에 대한 어떠한 연관성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 직후 피시백은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관계자에게 자신이 보고 겪은 가혹행위의 전모를 폭로했고, 9월 공화당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 존 매케인 의원과 존 워너 위원장에게 '명예의 문제(Matter of Honor)'란 제목의 서신을 보냈다. 매케인은 10월, '미국 정부의 물리적 통제하에 있는 그 누구도, 국적과 소재지를 불문하고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고 모욕적인 처우나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구금자 처우법(Detainee Treatment Act)'을 발의했고, 상원은 90대 9의 압도적 표차로 승인했다. '테러와의 전쟁'의 나침반이 처음 흔들린 순간이었다.

미 육사출신 공수-특수작전부대 엘리트 장교로, 부시-체니-럼즈펠드로 이어지는 '네오콘(Neocon)' 군사권력의 인권 불의에 맞선 이언 피시백이 지난해 11월 19일 미시건 주 뱅고어(Bangor)의 한 서민 사설 요양병원에서 외롭게 숨졌다. 향년 42세.

2019년 10월 'New America' 간담회에 초청받아 전쟁의 윤리와 심리-정신적 영향에 대해 연설하는 이언 피시백. 2015년 소령으로 예편한 그는 학업을 이어가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인한 우울증과 피해망상 증상에 시달렸다. wikipedia.

2019년 10월 'New America' 간담회에 초청받아 전쟁의 윤리와 심리-정신적 영향에 대해 연설하는 이언 피시백. 2015년 소령으로 예편한 그는 학업을 이어가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인한 우울증과 피해망상 증상에 시달렸다. wikipedia.

피시백은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주민 1,500명 안팎의 작은 마을 뉴베리(Newberry)에서 성장했다. 집배원이던 아버지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해병 베테랑이면서 60,70년대 평화운동에 동조했고, 집 거실에는 반전 포스터와 슬로건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고 한다. 풋볼과 레슬링에 능했던 피시백은 고교시절 풋볼팀 MVP였고, 고학년 회장으로서 학점 3.953(4점 만점)로 97년 학교를 졸업했다. 가정 형편 때문에 군에 입대하려던 그에게 풋볼 교사는 육사를 권했고, 그는 생도 중대장을 지내며 학급 상위 5등 이내의 성적으로 육사를 졸업하고 2001년 임관했다.
2015년 소령으로 예편하기까지 그는 82공수사단과 제5특수작전부대 지휘관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4차례 파병됐고, 2차례 동성무공훈장을 받았고, 2012~15년 육사 교관으로 강단에 섰다. 육사 교훈(motto)인 '임무, 명예, 그리고 조국(duty, honor, and country)'의 가치와 '생도명예규범'을 목숨처럼 여기던 그에게 동기들은 '꼿꼿한 화살(straight arrow)'이란 별명을 선사했다. 휠 줄 모르는 윤리적 원칙주의자인 그를 괴롭힌 건 혼동스러운 과녁이었다.

이라크-아프간 전장에서 그가 맞닥뜨린 실상은 그의 원칙과 사뭇 달랐다. 구금자를 발가벗기고, 구타하고, 뼈를 부러뜨리고, 물고문하고, 죽이겠다고 으르고, 실제로 죽이고, 기절할 때까지 가혹하게 체벌하고, 잠을 재우지 않고, 저체온증에 걸릴 만큼 극한 환경에 방치하기…. 가학적 고문에 익숙해진 병사들은, 알카에다 정보 수집이란 명분에 아랑곳 않고 유희의 소일거리로 그런 행위를 일삼곤 했다. 고문-가학의 주체는 주로 현지 CIA 요원이나 정보부대 취조원이었지만, 부대원들은 취조실을 경비하며 폭행 등 가혹행위를 거들라는 명령을 받곤 했다.

럼즈펠드의 창의 티타늄 촉으로 불린 최정예 비밀 특수작전팀 'Task Force 121'이 이라크전 발발 직후인 2003년 여름 창설됐다. 작전 내용은 물론이고 부대 규모조차 극비이고 지휘관과 부대원 전원이 가명을 쓰고 심문요원은 머리를 길렀던 그 부대가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고 사담 후세인을 생포하고,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를 무력화시킨 주역이었다. '고가치 표적'만 다루며, 제네바협약이 보장한 국제적십자사 요원에게도 부대 출입허가를 내준 적이 없다는 걸 자부심의 밑천으로 삼았다는 부대. 바그다드 인근 그들의 기지 '캠프 나마(Camp Nama)'가 'Nasty Ass Military Areas(역겨운 군사지역'라 불렸다는 그 부대는 2006년 해산됐다.

'휴먼라이츠워치'의 폭로에 동조한 '제프(Jeff, 가명)'라는 이가 그 부대 심문요원이었다. 국방부 심문 전문가 양성학교 '후아추카(Huachuca)'를 거쳐 언어연구소 'DLI(Defence Language Institute)'에서 아랍어를 익힌 뒤 2004년부터 '121'에 배속된 그는 휴먼라이츠워치 관계자에게 자신들이 쓰던 일부 고문 방식을 공개했다. 겨울밤 발가벗긴 구금자에게 얼음물을 끼얹고 진흙탕에 뒹굴게 한 뒤 에어컨 앞에 세워두는 과정을 반복하기, 하루 4시간만 잠을 재우면서 30분 간격으로 깨우기…. 한번은 상급자에게 '(피고문자가) 아무 것도 모르는 멍청이(chump) 같다'고 했더니 "너가 그를 꺾지 못해서"라고 하더라는 이야기. 일부가 고문에 문제를 제기하자 부대장 지시를 받은 법무감(JAG lawyer)이 심문요원들을 모두 모아놓고 '그들은 제네바협약이 규정한 '전쟁포로(POWs)'가 아니라 '피통제자(PUCs, Persons under control)'이며, "여러분에게는 어떠한 문책도 없을 것"이라고 확답했다는 이야기. 부시 정부는 구금자를 군인이 아닌 '적 전투원(enemy combatant)'이라 통칭했다. 제프는 "설사 그들이 알카에다 조직원이었어도 그들에게 그런 짓을 하기 싫었다"고 "나는 내 존엄을 지키고 싶었다"고 휴먼라이츠워치 관계자에게 진술했다.

201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군교도소에서 촬영된 헌병들의 수감자 인권 유린 사진. 가학행위에 익숙해진 군인들은 정보 수집 심문-고문과 별개로 재미로 저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내부고발자들은 폭로했다. CBS 방송 사진.

201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군교도소에서 촬영된 헌병들의 수감자 인권 유린 사진. 가학행위에 익숙해진 군인들은 정보 수집 심문-고문과 별개로 재미로 저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내부고발자들은 폭로했다. CBS 방송 사진.

피시백은 본인은 물론이고 자신의 소대원-중대원들이 그런 일에 연루되지 않도록 저항했고, 상급자 명령으로 부하들의 명예를 지켜주지 못한 일들을 수치스러워 했다. 그리고, 럼즈펠드의 의회 '변명'과 국방부 공식 발표로 그는 군 내부에서 '명확한 명령의 근거'를 제시받을 기대를 포기했다. 대신 육사 생도명예수칙을 좇았다. "생도는 거짓말하거나 남을 속이거나 뭔가를 훔쳐서는 안 되며, 그런 행위를 용인해서도 안 된다."

그는 자신의 폭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우려, 여당인 공화당 의원과 접촉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휴먼라이츠워치 측에 요청했다. 보좌관 인터뷰를 거쳐 매케인과 워너 의원에게 보낸 2005년 9월 16일 서신에 그는 이렇게 썼다. "어떤 이는 '알카에다의 잔혹함에 비하면 우리의 행위는 별 게 아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미국의 도덕이 알카에다를 기준으로 삼게 된 것입니까? 미국은, 그리고 우리의 행위는, 독립선언과 헌법이 명시하고 있듯, 보다 높은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보를 위해서는 우리의 이상도 희생시킬 수 있는 것입니까?(...) 역경에 처하면 저버릴 수 있는 이상이라면 그 이상은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싸우다 죽을지언정, 미국을 지탱하는 이상의 작은 일부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베트남전 포로로 6년여간 고문당한 경험이 있는 매케인은 보름 뒤인 10월 5일 법안 발의 연단에 서서 이렇게 연설했다. "이 용감한 병사는 17개월 동안 홀로 우뚝 서서 이 단순하고도 중요한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미국이 진정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 우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저는 피시백 대위와 같은 자질을 갖춘 남성과 여성이 우리 군에 있도록 해준 신께 매일 감사드립니다. 저는 의회가 그의 질문에 대답할 책임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듬해 5월 월간지 '타임(Time)'은 피시백을 '힘과 재능, 도덕적 모범으로 세상을 바꾼 100인'에 선정하며, 그의 선택을 베트남전쟁 '미라이 학살' 현장에서 민간인들을 헬기로 구조한 휴 톰슨 주니어(Hugh Thompson Jr)의 영웅적 활약에 비유했다. 만 27세 대위 피시백은 "나는 미국의 가치에 부응하는 명확한 기준을 요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여론과 정치권의 압박에 밀려 가혹행위 재조사에 나선 군 대변인은 그의 고발을 "장황하다(verbiage)"고 폄하했고, 부대장인 82공수사단장 빌 콜드웰(Bill Caldwell, 현 조지아주 군사대학 총장) 소장은 "그가 문서 형식으로 명령계통을 밟아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행위"라고 말했다. 휴먼라이츠워치에는 악담을 퍼붓는 메일이 쇄도했고, 소령으로 승진한 피시백의 군 생활 역시 그리 순탄치 못했다. 군 조사당국은 가혹행위 실태보다 폭로 경위 및 동조자 색출에 주력했다. 국방부는 2,800여명을 인터뷰해 9.11 이후 400여 건의 군 구금자 가혹행위를 적발, 230명을 기소했다.

임관 직후인 2003년 공수부대 소위 시절의 이언 피시백과 어머니(왼쪽), 누이(오른쪽). 그는 15년 뒤 매케인 상원의원에게 보낸 편지에 '우리 부대는 훈련 받은 야전수칙고 그에 반하는 상관의 명령 사이에서 자주 찢기곤 했다(were often torn)'고 썼다. 가족사진.

임관 직후인 2003년 공수부대 소위 시절의 이언 피시백과 어머니(왼쪽), 누이(오른쪽). 그는 15년 뒤 매케인 상원의원에게 보낸 편지에 '우리 부대는 훈련 받은 야전수칙고 그에 반하는 상관의 명령 사이에서 자주 찢기곤 했다(were often torn)'고 썼다. 가족사진.

2012년 육사 교관이 된 그는 그해 미시건대에서 철학과 정치학 석사(2012) 학위를 받고 2015년 예편했다. 지난 해 초 받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전쟁의 방법과 윤리(Method and Morality of War)'였다. 2020년 풀브라이트 펠로로 스웨덴 룬드(Lund)대 연구원 자격을 얻었고, 영영 조국을 떠나겠다며 EU시민권을 신청했다. 2020년 1월 지역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조국에 내 생을 바쳤고, 나름 존중 받을 만한 봉사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받은 보상은 무엇인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군 예편 전후부터 앓던 그의 우울증 등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은 박사과정 시절부터 피해망상 증상으로 악화해 '누군가 자신을 암살하려 한다'거나 '누가 내 논문을 표절하고 음해한다'고 하곤 했다. 그는 출국 후 증상이 심해져 이내 귀국했지만, 잦은 다툼과 말썽을 부려 법원 치료명령을 받고 지난해 9월 무렵부터 주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사설 정신병원에 수용돼 향정신성 의약품 처방을 받아왔다. 지인들은 베테랑 전용병원 병실이 날 때까지 의료서비스가 비교적 나은 병원으로 그를 옮기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다. 친구인 조지타운대 철학과 교수 낸시 셔먼(Nancy Sherman)은 "올바름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감각은 도덕적 고립감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셔먼은 "타협할 줄 모르는 그의 윤리의식이 이 나라에 큰 도움을 주었지만 그가 치른 대가 역시 그만큼 컸다.(...) 그는 상처 입은(flawed) 비극적 영웅"이라고 말했다.

그는 육사 동기인 전처(Clara Hoisington)와 낳은 만 12세 딸을 남기고, 베테랑 병원에는 끝내 누워보지도 못한 채 가난한 병실에서 숨졌다. 휴먼라이츠워치 활동가 출신 민주당 하원 의원 톰 맬리나우스키(Tom Malinowski) 의원은 '폴리티코' 기고문에 "피시백은 삶으로 불의를 폭로했고, 죽음으로 정신질환자, 특히 베테랑 질환자들에 대한 국가의 어처구니없는 처우를 폭로했다"고 썼다. 재향군인회관 격인 지역 리전홀(region hall)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고향 친구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그가 숨진 직후인 지난해 11월 민주당 상원 원내부총무 딕 더빈(Dick Durbin) 의원은 관타나모 수용소 즉시 폐쇄를 골자로 한 국방수권법(NDAA) 수정안을 발의하며 작고한 두 영웅 매케인과 피시백을 언급했다. 그리고 "우리는 고문을 묵인함으로써 이 나라를 수치스럽게 했고, 소중한 병사들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이제 이 어둠의 장을 영원히 걷어내자"고 역설했다. 의회는 그의 수정안을 외면했고, 관타나모에는 지난해 말 현재 39명이 수감돼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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