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 프랑스 음식점 '빠리가옥' 운영자들
18일 돈의동쪽방상담소 앞에서 도시락 나눔
거동 불편한 주민 30여명 집엔 직접 배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은 집에 찾아와 도시락을 건네는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외국인 억양이 있는 한국어로 신년 인사까지 전한 봉사자가 갈색 머리의 프랑스인 미카엘(39)씨였기 때문이다. "어쩐 일로 왔냐"고 퉁명스레 그를 맞았던 주민들은 금세 반가움의 미소를 띠었다.
미카엘씨와 펠리시안(34)씨, 두 셰프가 인근 익선동에서 운영하는 프랑스 음식점 '빠리가옥'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시립 돈의동쪽방상담소 앞에서 350인분의 도시락 나눔 행사를 열었다.
상담소에서 미리 행사를 공지한 덕에 오전 10시 40분부터 상담소 앞 골목엔 도시락을 받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미카엘씨와 펠리시안씨는 이른 아침부터 직접 음식을 만드느라 밀가루가 묻은 점퍼를 입고 매니저 김지애(34)씨와 함께 도시락을 나눠 줬다. 메뉴는 쪽방 주민들의 높은 연령대를 고려해 씹기 편한 프랑스식 소고기 요리인 비프 부르기뇽과 매시드 포테이토(으깬 감자)로 준비했다. "프랑스 음식은 처음 먹어보는데 걱정했던 것과 달리 맛있다"는 나정혜(68)씨가 그랬듯이, 도시락을 받은 주민들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상담소 앞으로 가보라고 채근했다.
대기 줄이 사라지자 빠리가옥 직원들은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을 위해 도시락 배달에 나섰다. 쪽방촌 사정에 훤한 상담소 직원이 앞장섰다. 이들은 여차하면 기어 올라가야 할 만큼 가파른 계단도 기꺼이 올라 30여 곳에 음식을 전했고, 복된 새해를 기원한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최선권 돈의동쪽방상담소 행정실장은 "이런 기부 행사엔 물품만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음식점 직원들이) 직접 골목을 돌아다니며 도시락을 전하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두 셰프가 익선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한 지는 올해로 6년 차. 호주, 일본,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 셰프로 일하다가 한국인의 정(情)에 끌려 이곳에 정착했다. 이들은 출퇴근길에 마주치던 쪽방촌 주민들에게 늘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었다고 도시락 기부 이유를 밝혔다.
미카엘씨는 "출근하려고 지하철역에서 내릴 때마다 주변을 깨끗하게 쓸고 계시던 주민분들께 제가 만든 음식을 드릴 수 있어 기뻤다"며 "어렸을 때 가난했던지라 자라면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항상 생각했다"고 말했다. 펠리시안씨는 "350인분을 준비하느라 전날 밤부터 요리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며 "여름에도 다시 나눔 행사를 하고 싶다"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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