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한-동남아 항로 운임 120건 담합
해수부 신고·화주 협의 절차 안 따라
업계 "절차상 흠결 빌미" 소송 예고
15년간 한국-동남아시아 항로의 해상 운임을 담합해 온 국내외 23개 해운사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000억 원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당초 8,000억 원에 이르는 ‘폭탄’ 수준의 과징금 부과가 예상됐지만 최종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전원회의에서 규모가 줄었다.
해운업계 반발에 해양수산부도 선사 편을 들며 힘을 보탰지만 공정위는 이들의 행위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수준'이라는 원칙론을 그대로 유지했다. 과징금을 받아 든 해운업계는 “절차상 흠결을 빌미로 부당공동행위자로 낙인찍었다”며 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공정위 "23개 선사, 15년간 120차례 운임 담합"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18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국내외 23개 사업자가 해운법상 요건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한국-동남아 항로에서 운임을 담합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62억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고려해운 등 국적선사 12곳과 △대만 △싱가포르 △홍콩 국적 11개 선사는 2003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한-동남아 수출·수입항로에서 총 120차례 운임 담합을 벌였다.
이들의 담합 범위는 △기본운임 최저수준 △기본운임 인상 △부대운임 도입·인상 △대형화주에 대한 투찰가 등 운임과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였다.
선사들은 담합을 위해 아시아 항로 운항선사 간 해운동맹(IADA),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동정협) 등을 통해 총 541차례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서로 다른 선사의 합의 위반사항을 감시하고, 세부 항로별 주간선사, 차석선사를 선정해 합의 이행 여부를 주도적으로 모니터링하기도 했다.
당초 공정위 사무처는 담합 기간 매출액의 8.5~10.0% 수준인 약 8,000억 원의 과징금을 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원회의 결과 매겨진 과징금은 8분의 1 수준인 962억 원으로 줄었다. 전원회의에는 담합에 나선 선사뿐 아니라 해양수산부 담당 국장까지 참고인으로 나서 해운사 입장을 설명했다.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전원회의에서) 해운업의 특성과 이 사건 공동회의의 특수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과징금 규모를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입 항로는 담합행위를 통해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고려해 과징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해운사 "해운법 범위 내 공동행동"… 공정위 "법 테두리 벗어나"
선사들은 ‘해운사는 운임·선박 배치, 그 밖의 운송 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 행위를 할 수 있다’는 해운법 29조 조항을 들어 반발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공동행위 후 30일 이내에 해수부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 전 합의된 운송조건에 대해 화주단체와 정보를 교환하고 협의해야 한다는 절차적 조건을 지키지 않았다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조성욱 위원장은 “해운업의 특수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난 반경쟁적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는 경쟁당국의 역할은 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해운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해수부 지도감독과 해운법에 따라 공동행위를 펼쳐왔는데도 절차상 흠결을 빌미로 해운기업을 부당공동행위자로 낙인찍었다”며 유감을 표했다. 협회는 공정위 심결에 오류가 있다며 해운공동행위의 정당성 회복을 위해 행정소송을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해수부도 "해운법 범위 내에서 공동행위를 한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정위와 해수부는 선사들의 공동행위와 관련한 해운법 개정 논의를 진행 중이다. 제재 대상인 불법 공동행위를 구체화해 선사 입장에서 불확실성을 줄이도록 하자는 것이 큰 틀에서 합의된 내용이다.
조홍선 국장은 “해운법상 특정 절차와 요건을 갖춘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실무적 차원에서 잠정적 협의가 된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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