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본 대중음악이 금지되던 때에도 한국과 일본 간에는 음악적 교류가 계속 이어졌어요. 한국 가수가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하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일교포 2세도 많았죠. 일본 대중음악의 역사를 쓰면서 이런 이야기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1995년 일본인으로만 구성된 록밴드 ‘곱창전골’을 결성해 20여 년간 한국에서 활동 중인 사토 유키에(58)씨는 최근 ‘일본 LP 명반 가이드북’을 펴냈다. 바이닐 레코드(LP) 매체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 대중음악의 대표적인 명반 200여 장을 소개한 책이다. 록커답게 록 장르를 중심으로 포크, 시티팝, 일본 가요, 엔카까지 다룬다. 일본 대중음악의 역사를 다룬 서적이 흔치 않은 국내 출판계에서 일본 음악가가 국내 독자를 위해 한국어로 쓴 일본 음악 안내서란 점이 이색적이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사토씨는 “4년 전쯤 출판사 안나푸르나 대표님이 일본 대중음악을 소개하는 책을 내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쓰게 됐다”며 “일본에서 명반으로 꼽히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앨범, 동시에 일본 음악의 역사를 다룰 수 있는 음반 위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수천 장의 LP를 소장한 수집가답게 책에 소개된 음반들은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시티팝 가수들인 야마시타 다츠로, 다케우치 마리야, 안리 등을 비롯해 해외 마니아들에게도 잘 알려진 플라워 트래블링 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등 일본 대중음악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대표작들을 소개했다. 그는 “집필을 시작할 땐 시티팝이 지금처럼 유행하지 않아서 비중을 키우지 않았는데 더 늘렸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책에는 학창시절 록 음악에 빠져 록커가 된 사토씨의 일본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진한 애정이 담겨 있다. 일본 현지에서 흔히 명반으로 꼽히는 앨범을 중심으로 개인적 취향도 일부 녹였다. 한일 양국 음악에 해박한 그답게 한국 대중음악과 연관된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서구 음악을 추종하면서도 일본만의 독특하면서도 다채로운 음악들을 만들어 내며 세계 2위 음악 시장을 일군 일본 대중음악의 저력을 읽어 낼 수 있다. 사토씨는 “1970년대 일본 음악에는 실험정신과 모험정신이 넘쳐 다채로운 음악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활동했던 한국계 음악가들의 이야기도 조금 담았다. 1979년 ‘아리랑노우타(아리랑의 노래)’로 데뷔해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노래한 ‘고슈시티(광주시티)’를 발표했던 하쿠류(한국명 전정일)가 대표적이다. 사토씨는 “일본에선 한국계임을 숨기고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적지 않다”며 “본인이 밝히지 않아 책에 쓰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간의 음악적 가교 역할을 하는 대표적 음악가다. 1995년 한국을 여행하다 신중현의 음악을 듣고 ‘곱창전골’을 결성해 1999년 한국에서 데뷔앨범을 냈다. 한국인과 결혼해 서울에서 살며 밴드 활동을 하는 한편 시나위, 윤도현 등 일본에 한국 음악가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여러 권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음악 활동은 사실상 끊긴 상황. 다른 멤버들이 모두 일본에 있어서다.
사토씨는 “3년 전 앨범 녹음을 마쳤는데 코로나19 등의 영향 때문에 발매하지 못하고 있다”며 “어서 무대에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LP 명반 가이드북’이 조금이나마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에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사토씨는 “가끔 바에서 DJ로 음악을 트는데 오래전의 일본 음악을 신청하는 젊은 손님들이 크게 늘었다”며 “기회가 된다면 이번 책에서 소개하지 못한 좋은 음악들을 더 많이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