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구청 직원·사회복무요원
업무용 시스템으로 쉽게 빼내
'박사방' 조주빈에도 17건 유출
적발돼도 벌금형·집행유예 그쳐
"처벌 강화·상시 관리 필요"지적
서울의 한 구청 교통행정과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A씨는 2016년 7월 함께 일하는 또 다른 사회복무원 B씨와 C씨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업무 중 사용하는 차량정보시스템으로 차량 소유주 인적사항을 조회해 흥신소에 주면 8만 원 정도를 받는데, 2만 원을 줄테니 같이 하자"는 내용이었다.
B씨와 C씨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 이를 승낙하고 A씨가 요청하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빼냈다. A씨는 해당 정보를 경남 지역에서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인물에게 전송하면서 8차례 걸쳐 약속한 돈을 챙길 수 있었다.
신변보호 조치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석준(26)이 피해자 가족의 주소 등을 흥신소 업자에게 얻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흥신소 업자에게 돈을 받고 정보를 넘긴 사람이 구청 공무원이었다는 점에서 행정기관의 허술한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뻥 뚫린 정보조회망...업무 중 정보 빼돌려
16일 한국일보가 2017년부터 최근까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형이 확정된 주요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경찰관부터 구청 직원, 사회복무요원까지 다양한 공무원들이 흥신소(심부름센터)에 개인정보를 팔아온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이들 중에는 개인정보 접근권이 광범위한 경찰관도 여럿 있었다. 2015년 11월 충북의 한 경찰서 소속이던 D씨는 흥신소 운영자로부터 한 자동차 소유주의 개인 정보 확인을 요청받고, 업무용 휴대폰으로 이를 전달했다. D씨는 이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유출하다 적발이 됐는데, 확인된 것만 9건에 달했다. 유출된 주소지는 충북만이 아니라 경기 수원시와 경북 구미시 등 전국 각지에 걸쳐 다양했다.
정보 조회 권한을 받아 공무원 업무를 보조하고 수행하는 사회복무요원 다수도 '정보 유출자'로 이름을 올렸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등에게 정보를 판 서울의 한 주민센터 사회복무요원 E씨도 그중 한 명이다. E씨는 2019년 3~6월까지 총 207명의 개인정보를 무단 조회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개인정보 107건을 건당 15만 원을 받기로 하고 넘겼는데, 조주빈에게도 17건이 흘러간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에서 심부름센터 일을 돕던 한 사회복무요원은 주민센터 동료와 함께 개인정보를 빼돌려 2016년 3월부터 6개월간 약 120만 원을 벌기도 했다.
손에 쥔 개인정보를 직접 범행에 사용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교제하던 여성의 집에 무단침입한 인천의 한 주민센터 직원은 여성의 이별 통보에 행정시스템에 접속, 전출입내역 등으로 여성의 거주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적발 힘든 범죄..."분명한 처벌, 꼼꼼한 보호망 구축해야"
반복되는 행정기관의 개인정보 유출에 '보다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살인이나 성폭력 등 심각한 범죄의 단초를 제공하는 범죄임에도 대부분 유출범에 대한 처벌이 벌금형 혹은 집행유예형 등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경찰관 D씨의 경우에도 1심에서는 벌금형 500만 원이 선고됐을 뿐이며, 사회복무요원들 역시 대체로 집행유예형을 선고받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유출 의심 사례를 수시로 확인하는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출된 정보를 이용한 별도의 범죄가 포착되기 전까지는 유출 자체를 적발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유출 여부를 점검하고 예방하는 상시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흥신소 등에 흘러들어간 정보는 스토킹이나 성폭력 등 범죄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분명한 처벌은 물론이고 이중, 삼중의 유출 예방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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