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 총리로서는 한국에 처음으로 ‘사죄’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전 총리가 지난 9일 별세했다고 14일 NHK와 교도통신 등이 보도했다. 향년 91세. 아이치현 나고야시 출신으로 물방울무늬 넥타이가 트레이트마크였던 그는 1989년 8월 10일부터 1991년 11월 5일까지 제76, 77대 일본 총리를 지냈다.
가이후 전 총리는 1992년 노태우 전 대통령 방일 당시 한일정상회담(5월24일)에서 “과거의 한 시기, 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믿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하신 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お詫び·오와비)를 드리고자 한다”며 사과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등은 ‘유감’ 표명에 머물렀을 뿐 사과나 사죄는 언급하지 않았다.
같은 날 저녁 아키히토 일왕도 노 대통령 환영 만찬에서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당시 이 발언은 “명백한 사과라 볼 수 없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드러난 표현이란 점에서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방일 당시 히로히토 일왕이 밝힌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란 표현보다 진전된 것으로 한국 정부는 받아들였다. 이어 25일 노 전 대통령은 일본 국회의사당에서 “한일 양국이 동반자로서 태평양시대를 같이 열어나가야 한다”고 연설하고, 만성적 무역불균형과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 해소 등을 요구했다.
가이후 전 총리와 관련, 일본 언론은 1990년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해 걸프전으로 발전하자 당시 가이후 정권이 다국적군에 총 130억 달러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주로 보도하고 있다. 지난달 일본 외무성이 기밀 해제해 공개한 기록에 따르면, 조지 W H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은 걸프 위기 발발 후 미일정상회담에서 자위대 파견과 후방지원을 요청했으나, 가이후 총리는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 무력 행사를 금지한 헌법 9조를 내세워 응하지 않았다. 다만 종전 후 걸프 지역에 해상자위대 소해정을 파견해 미군을 지원했는데, 이는 자위대의 첫 해외 활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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