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코리아타임스 공동기획>
경찰, 수사 과정에서 통역 서비스 제공 불구
제도 몰라서, 말 안 통해서 신고조차 못 해
"신고 접수기관 늘리고 방법 적극 홍보를"
외국인 상대 성범죄가 매년 수백 건씩 발생하고 있지만, 피해자 상당수는 방법을 모르거나 말이 통하지 않아서 신고를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 경찰은 통역을 포함한 외국인 신고 지원 체제를 마련해뒀지만 홍보가 덜 돼 이용률은 높지 않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이 외국인 피해자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보호책을 마련하고, 당사자들에게 이를 알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13일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외국인 성폭력 피해자의 정서적 안정이나 언어장벽 해소 등을 위해 신고부터 수사 단계까지 통역 서비스와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정재형 경찰청 성폭력전문수사관은 "다문화가족·외국인 지원기관인 다누리콜센터와 연계해 13개 언어 통역을 24시간 365일 지원하고 있다"며 "경찰 조사를 받을 땐 통역은 물론 신뢰관계인과 동석해 조사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다누리콜센터는 필요한 경우 외국인 피해자를 쉼터 등 보호시설에 입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행 피해자 지원 제도로는 한계
하지만 국내 체류 외국인 가운데 이런 제도를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수년 전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처음 보는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미국인 패트리샤씨는 "당시엔 한국말을 잘할 줄 몰랐고, 경찰에 통역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몰라서 신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성폭력 피해 신고가 부진한 건 경찰도 인지하고 있다. 여기엔 제도나 언어 차이뿐 아니라 체류 자격 문제 등 복합적 장벽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시각이다. 정재형 수사관은 "이런 점을 악용해 한국말이 서툴면 일부러 범행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국내 체류 외국인의 신고를 독려하고 피해 구제를 지원할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에선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도 제기된다. 아일랜드 출신 린다씨는 재작년 7월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한 남성이 접근해 치근대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린다씨의 강한 저항으로 남성이 발길을 돌린 직후,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것으로 보이는 경찰이 다가와 안위를 물었다. 그는 한여름 가벼운 운동복 차림의 린다씨를 훑어보며 서툰 영어로 "왜 옷을 그렇게 입고 있냐" "부주의하다" 등의 지적을 했고, 직업과 사는 곳을 묻기도 했다. 린다씨는 "혹시 나를 매춘부로 여기는 것 아닌가 하는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며 "경찰이 피해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고 지적했다.
"신고기관 확대하고 제도 적극 홍보해야"
전문가들은 국내 수사기관이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고, 외국인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적극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범죄에 취약한 근무·거주 환경에 놓인 여성들을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신고 가능 기관을 확대하는 식이다. 또 이런 정책을 외국인 당사자에게 알려서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최승호 법무법인 온담 변호사는 "외국인은 체류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행정절차를 이해하기 어려워 신고를 못 할 수도 있다"며 "어떤 공공기관에서든 피해 신고를 할 수 있게끔 법제화하고, 외국인 입국 단계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방법을 명시한 안내문을 배포하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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