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연애 리얼리티 전성시대'다. 지난 2018년 예능가를 강타했던 비연예인 연애 리얼리티 예능들이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이야기는 옛말인 듯하다. 돌아온 연애 리얼리티 전성기는 이전보다 더욱 강력하고 뜨거워졌으니 말이다.
연애 리얼리티史, 끝난 줄 알았지?
비연예인 출연자들 간의 리얼한 연애 심리를 가감없이 담아내며 예능계에 한 획을 그었던 데이팅 예능의 역사는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에는 연예인과 비연예인 출연자들의 로맨스가 메인 콘셉트였지만 2011년께에 접어들며 출연자 전원이 비연예인으로 구성된 현실형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포맷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약 4년여 간 큰 인기를 끌며 방송됐던 SBS '짝' 때문이다.
하지만 '짝' 촬영 중 여성 출연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프로그램이 폐지됐고,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던 비연예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역시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데이팅 예능에 대한 시청자들의 니즈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는 2018년 오디션 프로그램과 관찰 예능 등의 홍수 속 다시금 출사표를 던진 채널A '하트시그널' 시리즈를 필두로 시작된 '연예 예능 붐'으로 이어졌다. 당시 '하트시그널' 시리즈는 매 시즌 역대급 화제성을 낳았고, 비연예인 출연자들 역시 방송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를 정도로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하트시그널'의 성공 이후 유사한 성격의 데이팅 예능들이 홍수처럼 쏟아진 것은 당연했다. tvN '선다방', SBS '로맨스 패키지', JTBC2 '너에게 반했음', 엠넷 '러브캐처' '썸바디', MBN '비포 썸라이즈' 등 비연예인 출연자들의 러브라인을 내세운 연애 예능들이 우후죽순 론칭됐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앞다투어 출사표를 던진 아류작들의 등장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오직 '하트시그널' 신드롬의 낙수효과만을 바란 듯 차별점 없이 유사했던 연애 리얼리티의 범람이 시청자들에게 기시감과 피로감으로 다가간 탓이다. 결국 역대급 부흥기를 누리던 연애 예능은 쇠락기에 접어들었고, 그 자리는 새로운 예능들이 채웠다.
이후 무려 3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명운을 다한 줄만 알았던 연애 예능이 이렇게나 화려하게 귀환할 줄은, 그리고 이렇게 뜨거운 전성기를 맞이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돌아온 전성기, 뭐가 다를까
지난해 방영된 카카오TV '체인지데이즈'와 티빙 '환승연애'는 연애 리얼리티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두 프로그램 모두 공개 이후 수천 만 뷰의 누적 조회 수를 기록하며 시청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오랜만에 등장한 비연예인 출연 연애 예능 두 편이 나란히 입소문을 타며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이유는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한 차별화 된 콘셉트에 있었다. '환승연애'의 경우 다양한 이유로 이별한 커플들이 모여 지나간 사랑을 되짚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콘셉트로, '체인지데이즈'는 이별을 고민 중인 세 커플이 함께 여행을 떠나 상대를 바꿔가며 데이트를 즐기고 이별 혹은 새로운 만남을 선택하는 과정을 콘셉트로 삼았다. 두 예능 모두 소위 MZ세대로 불리는 이들의 연애관을 가감없이 반영한 파격적인 구성을 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같은 선택은 제대로 빛을 발했다. 천편일률적인 포맷 속 하락세를 걸었던 연애 예능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분 것이다. 시청자들은 달라진 세대상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연애 예능의 등장에 환호했고, 이는 곧 화제성 등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두 프로그램의 성공 속 앞서 한 차례 연예 리얼리티 부흥과 쇠락을 겪었던 제작진들은 더 이상 '답습'을 택하지 않았다. 이후 SBS플러스 '나는 솔로', 티빙 '러브캐처 인 서울', MBN '돌싱글즈', 넷플릭스 '솔로지옥' 등 다양한 비연예인 연애 예능이 잇따라 론칭했지만 이들을 향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잇따른 출발에 역풍을 맞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각 예능들이 '연애 예능 붐'이라는 이름 하에 긍정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모양새다.
실제로 현재 방송되고 있는 (혹은 최근 종영한) 연예 리얼리티의 성적은 대부분 만족스러운 추세다. 넷플릭스 '솔로지옥'의 경우 최근 세계 넷플렉스 TV쇼 부문 10위를 차지했고, 국내를 포함한 3개국에서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나는 솔로' '돌싱글즈' 역시 종편, 케이블 채널이라는 한계를 딛고 유의미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입증했다.
이는 곧 큰 틀에서는 비슷한 콘셉트를 지향할지언정,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확실한 차별점을 확보한다면 충분히 예능계 트렌드를 이끌어 나가며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른바 '핫 걸' '핫 가이'들을 주인공으로 화끈하면서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연애 리얼리티를 선보이는 '솔로지옥'부터 결혼 적령기 남녀들의 지독히 현실적인 연애 감정이 그려지는 '나는 솔로',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돌싱들에 포커스를 맞춘 '돌싱글즈'까지 각각에서 연상되는 이들의 명확한 콘셉트가 바로 이들의 성공 요인이었다.
이러한 변화의 근간에는 넷플릭스, 티빙 등 다양한 OTT 플랫폼으로 확대된 예능 제작 환경의 영향도 있다. 지상파 등 기존 TV 채널에서는 수위 등을 고려해 오롯이 담아내기 어려웠던 남녀간의 솔직한 연애 감정을 보다 과감하고 자유롭게 그려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서 연애 예능의 스펙트럼 역시 한 단계 확장됐다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솔로지옥'을 연출했던 김재원 PD 역시 "(OTT 플랫폼의 특성상) 표현의 자유에 대해 열려있기 때문에 수위에 개의치 않고 진행할 수 있었다. 제작 규모나 여러 면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허락됐다. 덕분에 PD로서는 꿈에 가까운 프로젝트를 실현해볼 수 있었다"라며 플랫폼의 변화가 이끌어낸 프로그램의 성격적 변화를 설명했다.
이는 단순히 연애 리얼리티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보다 확대된 제작 환경과 이로 인해 열린 새로운 도전 기회는 그간 정체돼 있던 K-예능계를 한 단계 진화시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돌아온 연애 리얼리티 전성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이어져 나갈 지, 이를 계기로 예능 시장의 판도에는 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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