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에 앞서 규현에게 사과하고 싶다. 지금까지 그의 예능감이나 음악성을 의심한 적은 없다. 그러나 딱히 엄청난 매력을 느낀 적도 없다. 이특이나 신동 등 개성이 강한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비교했을 때 다소 평범하고 밋밋해 보인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수많은 출연자들 중에 자꾸만 규현에게로 눈이 간다. 그의 매력을 뒤늦게 알아차린 탓도 있겠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규현이 뿜어내는 성숙미가 빛을 발하는 덕도 있다. 흔히 얼굴이 그 사람의 인생을 담는다고들 하지 않나. 최근 TV 속 규현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맑고 밝게 빛난다.
'신서유기' 나영석 PD 사단을 비롯해 규현과 함께 일했던 많은 제작진들은 그를 사랑한다. 그와 친한 비연예인 지인들을 통해서도 숱하게 미담을 들어왔다. 다들 입을 모아 얘기하는 건 규현의 인간미와 진정성이다. MC와 심사위원으로 분주하게 활동 중인 요즘, 왜 많은 이들이 규현을 사랑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게 됐다.
인간미 넘치는 심사위원
JTBC '싱어게인2'에서 규현은 김이나 윤도현 이선희 유희열 선미 송민호 이해리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활약 중이다. 가장 화제가 됐던 건 아마도 가수 김현성의 출연 당시 규현의 '오열'이 아닐까 싶다.
43호 가수로 등장한 김현성은 1997년 MBC '강변가요제' 금상을 수상한 뒤 1집 앨범 '선물'을 발매하며 데뷔했다. '소원' 'Heaven(헤븐)' 등 다양한 히트곡을 냈던 그는 무리한 스케줄로 성대결절이 찾아왔고 결국 무대를 떠나게 됐다.
'실패한 가수'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 출연했다는 김현성은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지만 불안정한 음색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선희 등 다른 심사위원들도 가슴 아파했지만 규현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이후 마음을 추스른 그는 "저도 성대결절을 앓았던 적이 있었는데 감히 얼마나 힘드셨을지 가늠할 수 없지만 제게는 우상이었고 큰 팬이었다. 선배님의 노래 수 백 번 들었던 것 중에 오늘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선배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며 박수를 보냈다. 규현의 진심 어린 심사평에 김현성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다른 참가자들을 향한 솔직한 심사평도 눈길을 끌었다. 규현은 73호 가수에 대해 "제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의 가수다. 배가 너무 아프다"며 "가장 황당했던 것은 첫 소절에 끝났다는 것이었다. 톤과 분위기와 감성으로 이미 압도해버렸다. 너무 좋았다"면서 그를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았다. 같은 가수로서 느끼는 귀여운 질투심의 표현은 극찬 그 이상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칭찬만 하는 것은 아니다. 51호 가수에게는 "되게 어설프다. 그런데 어설퍼서 좋았다"며 "너무 퍼포먼스를 프로처럼 했으면 안 와닿았을 것 같은데, 그 안에서 조화가 있었다.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는 무대가 아니었나"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규현의 심사평은 성격만큼이나 솔직 담백하다. 아름다운 단어들을 골라내 멋스럽게 꾸며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지도 않는다.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는 그의 말들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관통한 이유다.
미친 공감 능력도 장점
넷플릭스 '솔로지옥'에서도 규현의 매력은 빛났다. 입만 열면 빵빵 터지는 MC 홍진경의 활약도 컸지만, 남다른 공감 능력을 자랑하는 규현 덕분에 참가자들이 처한 상황이나 심리 상태가 시청자들에게 더욱 깊게 다가왔다.
규현은 모니터를 보면서 참가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러브라인을 추측해 몰입도를 높였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면에서도 세세한 분석으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예능감을 분출해온 그는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적재적소에 웃음 포인트를 심으며 '예능 내공'을 입증했다.
선택받지 못한 참가자의 모습에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반전의 상황에서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좋아하는 여성을 향해 직진하는 한 참가자를 향해서는 "너무 멋지다. 정말 친해지고 싶다"면서 '찐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프로그램의 인기에는 출연자들의 화제성도 한몫했다. 특히 유튜버 프리지아(송지아)가 국내외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솔로지옥' 인기에 불을 붙였다. 10일 미국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솔로지옥'은 전날 넷플릭스 전 세계 TV쇼 부문에서 5위에 올랐다.
그 자체가 '희망의 아이콘'
지난 2019년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규현은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음에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사연을 고백했다. 당시 규현은 "내가 12년 전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 4일 정도 혼수상태에 있었고 병원에 3~4개월 입원해 있었다"며 "그때 깨어나기 전, 갈비뼈가 다 부러져 폐를 찌르는 상황이었다고 한다"고 회상했다.
그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목을 뚫고 호스를 넣어 팽창을 시켜야 한다는 거였다. 우리 아버지가 '아들의 꿈이 가수이고 노래를 하고 싶어 하는 애인데 목소리를 빼앗아버리면 난 이 아이가 살아나더라도 꿈을 빼앗아가버리는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 수술을 해도 살지 안 살지 모르는 거였는데 병원에 나이 지긋한 선생님께서 보시더니 옆구리를 뚫었는데, 다행히 수술이 성공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며 "아버지에게 정말 감사하고 있다. 그 순간에 그렇게 생각하신 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커다란 위기 상황을 딛고 일어난 규현이기에 타인의 아픔과 간절한 마음에도 더 깊게 공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월이 흐를수록 드러나는 그의 인간미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프로그램에 날개를 달아줄지 기대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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