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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하던 美 25세 흑인 청년의 억울한 죽음… 단죄는 안 끝났다

입력
2022.01.09 15:00
수정
2022.01.09 15:4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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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아버리 총격 백인 3명 종신형 선고
초법적 폭력 가능 '시민체포법' 여전해

지난해 11월 24일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에서 흑인 아머드 아버리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백인 남성 3명에게 유죄 평결이 내려지자 시위대가 환호하고 있다. 브런즈윅=EPA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4일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에서 흑인 아머드 아버리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백인 남성 3명에게 유죄 평결이 내려지자 시위대가 환호하고 있다. 브런즈윅=EPA 연합뉴스


2020년 2월 23일 미국 조지아주(州) 항구도시 브런즈윅 외곽 샤틸라 쇼어. 여느 때처럼 거리에서 조깅을 하던 흑인 남성 아머드 아버리(25) 앞을 흰색 픽업트럭 한 대가 막아섰다. 샷건을 들고 차에서 내린 트래비스 맥마이클(35)이 아버리와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하는 총성이 들리고 비틀거리던 아버리가 쓰러졌다. 트럭에는 트래비스의 아버지 그레고리 맥마이클(65)도 타고 있었다.

맥마이클 부자는 아버리를 자신의 이웃집 공사 현장에 침입했던 절도범으로 오인했다. 아버리를 거리에서 발견하고 5분간 추격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이웃 윌리엄 브라이언(52)이 다른 차를 타고 가세했다. 기술대학에 입학해 삼촌들처럼 전기기술자가 되려 했던 아버리는 백인 남성 3명의 잘못된 공격에 삶을 마감해야 했다.

범행 초기 정당방위를 주장하던 맥마이클 등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2개월 뒤 브라이언이 찍은 추격 및 총격 영상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기소 후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은 “아버리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이 분노 때문에 피해자를 쫓았고, 단지 흑인 남성이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총을 쐈다”고 지적했다.

맥마이클 부자 등은 조지아주 시민체포법을 근거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남북전쟁 기간인 1863년 제정된 이 법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일반 시민도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게 권리를 부여했다. 아버리를 추격한 권리도 시민체포법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아버리가 공사 현장에 들어간 영상도 공개됐다.

흑인 아머드 아버리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로 종신형이 선고된 그레고리 맥마이클(가운데)과 트래비스 맥마이클(오른쪽) 부자, 윌리엄 브라이언. AFP 연합뉴스

흑인 아머드 아버리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로 종신형이 선고된 그레고리 맥마이클(가운데)과 트래비스 맥마이클(오른쪽) 부자, 윌리엄 브라이언. AFP 연합뉴스


그러나 백인 11명, 흑인 1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지난해 11월 맥마이클 등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지난 7일 선고 공판에서도 이들의 유죄가 인정됐다. 티모시 윔슬리 판사는 맥마이클 부자가 무고한 비무장 시민에게 3차례나 총을 쏘고, 피해자가 쓰러진 뒤에도 응급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맥마이클 부자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브라이언의 경우 30년 후에나 가석방이 가능한 무기징역형이 선고됐다.

윔슬리 판사는 “샤틸라 쇼어를 달리는 청년의 마음속에 깃들었을 공포가 계속 떠올랐다”며 공판 도중 1분 동안 묵념을 하기도 했다. 3명은 또 증오범죄와 관련된 추가 재판도 받아야 한다.

1차 재판은 끝났지만 과제도 남았다. 조지아주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던 지난해 5월 시민체포법을 철회했지만 39개 주에는 여전히 이 법이 살아 있다. 미국 건국 초기 공권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시민들에게 체포권을 부여한 시대착오 법률이 150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완전 철폐가 힘든 게 미국의 현실이다. 총기 보유 자유, 흑인 인종차별과 맞물린 백인들의 초법적 폭력이 21세기 미국 어딘가에선 합법적으로 자행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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