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벽강보호소. 이곳에서 15년 동안 거주하며 유기견을 돌보던 70대 보호소장 A씨가 지난달 29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보호소 봉사자 B씨는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병원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선 소장님이 갑자기 쓰러졌다”며 “동네 주민이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숨이 멎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B씨는 세상을 떠난 A씨를 애도할 틈도 없이 냉혹한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그는 보호소에 남아 있는 유기동물 90여마리를 돌볼 방안을 찾아야 했습니다. B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장의 부고 사실을 알리며 “과거에도 보호소에 있던 강아지들을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소장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을 알면 식용 목적으로 개를 훔쳐 갈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동물보호단체들이 속속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동물보호단체 ‘다솜’이 가장 먼저 나서 보호동물 35마리를 구조했습니다. 동물자유연대 역시 31일 17마리 유기견들을 자체 보호소 ‘온센터’와 위탁 보호시설로 옮겼습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구조한 개들에 대해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두려운 마음에 입질을 하는 개체가 일부 있지만, 대부분 잘 적응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고양시 동물보호팀도 15마리의 유기견들을 2월까지 임시보호하기로 했습니다.
SNS로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개인 자원봉사자들도 구조와 보호 동물 이송 작업을 도왔습니다. 동물단체들과 시민들의 협조 덕분에 벽강보호소는 빠르게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B씨에 따르면 현재 동물 구조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곧 보호소에 남은 폐기물을 수거하고 시설을 철거하는 작업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소장 사망 이후 1주일간 공황상태에 빠졌던 벽강보호소 내 동물들은 다행히 쉴 곳을 찾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설 동물보호소 관리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사설 보호소 운영자들이 A씨처럼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번 일은 재발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설 보호소를 제도권의 관리 아래 두려는 움직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에는 ‘사설 보호소 신고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현재 동물보호소는 지자체가 운영 주체가 된 ‘지자체 보호소’와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보호소’로 나누어져 있는데, 사설 보호소는 현행법상 동물 보호소가 아닙니다. 이 사설 보호소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한편, 지자체의 관리 감독을 받도록 하는 게 신고제의 목적입니다.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사설 보호소를 ‘영리목적 없이 유실, 유기, 피학대 동물을 임시로 보호하는 시설’로 정의했습니다. 최근 사설 보호소라는 간판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동물을 판매하는 일부 펫숍에 의해 유기견 입양을 생각하던 이들이 피해를 보는 사건들이 전해졌는데, 이를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시설 및 운영 기준이 추가로 마련될 예정입니다. 관할 지자체는 이 기준대로 사설 보호소가 운영되는지 감독할 권한이 생깁니다. 대표적인 시설 기준 중 하나가 CCTV 설치입니다. 시설 내에서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동물학대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또한 일정 면적에 맞춰 보호 동물 두수도 제한될 예정인데, 구체적인 기준은 법안이 통과된 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하위 법령으로 마련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설 보호소를 제도권 아래 편입하려는 이유는 사설 보호소와 속칭 ‘애니멀 호더’를 구분하기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입니다. 일부 사설 보호소가 중성화 수술 없이 보호 동물 개체 수가 끝도 없이 늘어나는 걸 방치하면서 동물복지가 훼손되는 문제는 공공연히 일어났었죠. 대표적인 예가 과거 ‘유기동물의 지옥’이라 불렸던 경기 포천시의 ‘애린원’이었습니다. 애린원은 보호 동물의 개체 수가 지나치게 늘면서 관리 불가한 상태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법원이 폐쇄 명령을 내리면서 2019년 10월 최종 철거됐습니다.
벽강보호소 역시 소장 A씨가 한때 유기견 중성화에 거부감을 보이면서 개체 수가 250여마리로 늘어나 관리가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벽강보호소는 애린원과는 다르게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봉사자 B씨는 “A씨를 꾸준히 설득해 인식을 개선했고, 그 뒤로 A씨가 중성화에 적극 참여해 개체 수를 지금 수준까지 줄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도 “이번 사건으로 입소한 거의 모든 개체는 이미 중성화 수술이 완료됐다”고 전했습니다.
이제는 동물학대, 동물복지 개선을 위한 제도권 편입 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돌발 상황 발생 시 위기에 처한 사설 보호소 동물들을 구할 구체적인 방안 마련도 필요해진 듯합니다. 지자체의 역할이 단순히 규제에 머물지 않고 보호소 동물들에 대한 관리 책임을 가진 주체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죠.
동물자유연대 송지성 위기동물대응팀장은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물론 동물학대 방지를 위해 사설 보호소를 규제하고 필요할 때는 처벌 조치도 해야겠지만, 지자체의 책임 있는 관리에도 초점을 맞춘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벽강보호소 사건은 다행히 관할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했지만, 관련 규정이 없는 현실에서 같은 사건이 반복되면 지자체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이니까요.
송 팀장은 이에 대해 “앞으로도 1인 보호소 소장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며 “동물보호법 개정안의 취지는 지자체에도 관리 책임을 부과하는 만큼,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지자체가 중심이 돼 남아 있는 동물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대책을 세우고 민간에 협조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일처리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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