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6 의회 난입 사태 당시 비판 목소리 낸 기업들
'대선 불복' 지지 의원에 정치 후원금 중단 선언
시민단체 "717개 기업 의원들에 1,800만 달러 후원"
"바이든 지지율 추락이 기업들 정치 후원 부추겨"
지난해 1월 6일 미국 의사당 난입 사태 당시 '대선 불복' 지지 세력을 강력 규탄했던 미국 주요 기업들이 슬그머니 입장을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 후원금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대선 불복'에 표를 던진 의원들을 압박했던 미국 재계가 실제로는 이들에게 거액의 후원금을 챙겨준 것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지난해 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 ‘대선 불복’ 지지 의원 143명이 717개 기업 및 단체들로부터 1,800만 달러(약 216억7,000만 원)의 정치 후원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가운데 해당 의원들에 대한 기부를 중단하거나 보류하겠다고 공표했던 기업들의 후원 규모가 240만 달러(약 29억 원)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시민단체 '워싱턴의 책임과 윤리를 위한 시민들(CREW)'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
2020년 미국 대선 직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불복’을 선언했다. 그해 12월 31일엔 ‘1월 6일, 워싱턴에서 보자’는 트윗을 올렸다. 1월 6일은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의회에서 인증하고 공표하는 날이었다. 이 트윗은 트럼프 전 대통령 극렬지지자들이 "국회에서 대선 불복에 표를 던지라"며 의사당에 난입하는 주요 계기로 작동했다. 실제 공화당 의원 147명은 '대선 불복'을 지지했다.
'미국 민주주의 유린의 날'로 기억되는 1·6사태에 미국 최대 경제단체인 상공회의소는 “의회 난입은 민주적 선거의 합법적 결과를 뒤집는 불법적 시도”라며 의원들을 포함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세력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지난해 상공회의소는 정치자금 모금단체인 ‘정치행동위원회(PAC)’를 통해 이들 의원에게 무려 767만 달러(약 92억 원)를 후원했다. 미 방산업체 보잉, 록히드마틴, 제약사 화이자, 금융회사 JP모건,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와 포드 등 주요 미국 기업들도 줄줄이 전향했다.
해당 기업들은 정치 후원은 ‘기업의 초당파적 정치 참여’라고 말을 바꿨다. 멜리사 밀러 포드 대변인은 “정치 후원금은 특정 이슈에 따라 영구적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회사와 고객의 이익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된다”며 “PAC 회원 간 논의 끝에 지난해 4월부터 후원을 재개했다”고 해명했다.
의회 난입 사태 이후 최소 6개월간 ‘대선 불복’ 지지 의원과 정당에 후원하지 않겠다고 했던 미국 최대은행 JP모건과 씨티그룹도 지난해 6월 이후 PAC를 통한 정치 후원을 즉각 재개했다. JP모건은 당시 직원들에게 “PAC는 JP모건이 미국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중요한 방법이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연말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이 기업들의 정치 후원금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현재 바이든 대통령은 지지율이 40% 초반대까지 주저앉았다.
에릭 데젠홀 기업컨설팅 전문가는 “기업은 공화당과도 사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며 “정부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 기업으로서는 규제 법안, 주주 단체 행동 등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진 그라보스키 홍보 전문가도 “소비자의 기억은 짧지만 의원들의 기억은 길다”며 “기업들도 해당 의원들과의 거래가 불쾌하겠지만 정치적 현실이 그렇다”고 전했다.
다만 미 싱크탱크 정치책임센터의 브루스 프리드 회장은 “기업이 성장하려면 건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기업들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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