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패가 문명 뒤흔드는 원전 기술, 후쿠시마는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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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실패가 문명 뒤흔드는 원전 기술, 후쿠시마는 잊지 않는다

입력
2022.01.08 04:30
수정
2022.01.0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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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본, 다른 일본] <54> 후쿠시마 재건의 길
코로나 시대, ‘위험사회’의 민낯을 생각하다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 보는 기획물입니다.

원전 사고 이후 황폐해진 후쿠시마 지역의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모색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사고 이후 오랫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던 인근 마을 후타바마치에 등장한 그래피티 아트. 도너츠로 유명했던 명물 식당 주인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사진 창작자 집단 오버올즈(www.overalls.jp) 제공, 일러스트 김일영. 사진의 저작권은 © ︎2021 OVER ALLs Co., Ltd.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또 새해를 맞았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다. 불필요한 만남을 자제하고, 외출할 때에는 마스크를 챙기며, 백신 접종의 유효 기한을 꼼꼼히 챙겨야 하는, 그런 불편한 일상에는 어느 정도 적응했다. 사실 우리를 낙담케 하는 것은 이 팍팍한 삶이 끝난다는 기약이 없다는 사실이다. 마치 재난 영화가 현실이 된 듯한 상황이 벌써 3년째에 들어섰는데 말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주장한 ‘위험 사회(risk society)’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그는 근대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윤택하고 안락한 삶을 선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위기에 인류를 노출시켰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우리는 환경 오염, 지구 온난화, 생태계 파괴 등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다양한 문제를 목격,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역시 교통, 통신 기술이 발달하고 물리적 이동성이 증대하면서 대두한 치명적인 위기다. 글로벌 시대에 신종 바이러스가 광범위한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는 오래전부터 있어 온 바다. 그 불길한 예언이 현실이 되어 우리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풍요로움에 안주하기보다는 전 지구적인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성찰을 키워야 한다는 석학의 조언을 새삼스럽게 돌이켜 보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위험 사회’의 민낯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에 있는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났다. 동일본대지진과 뒤따른 지진 해일로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원전에서 방사능이 대량으로 유출된, 세계 최악의 원전 사고였다. 사고 당시 상황과 관련해서 원전 운영사의 실책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다만, 당시 다급했던 상황을 찬찬히 복기하다 보면 훌륭하게 현장 대응을 했다고 한들 대형 사고를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생각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진도9로 측량된 가공할 만한 흔들림이 전기 공급 설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고, 뒤이어 원전 건물 전체를 덮친 14미터 높이의 거대 해일은 비상용 발전기마저 쓸모없는 물건으로 만들어 버렸다. 매사에 안전, 안심을 금과옥조로 삼는 일본 사회이지만, 사용 가능한 모든 전력 공급원이 완전히 유실되는 상황은 예상 밖이었던 것이다.

원전 사고는 위험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실제로 벡의 위험사회론은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직후에 간행되어 더욱 유명세를 탔다. 원전 기술 덕분에 질 좋은 전기를 값싸게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힘만으로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는 기술이라면 애초에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인류의 스케일을 넘어서는 무지막지한 자연의 공격을 그 어떤 인공물이 버텨 낼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원전 사고로 지역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방사능에 오염된 토지는 순식간에 버려진 땅이 되었다. 넓은 지역에 산재한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은 대단히 위험할 뿐 아니라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원전은 고도의 과학 기술의 성과일 뿐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인 만큼, 섣불리 찬반을 거론할 생각은 없다. 다만, 원전 기술은 작은 실패에도 문명 사회를 크나큰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은 잊어서는 안 된다. 대중의 인기에 연연하는 정치가나 과학 기술의 힘을 맹신하는 학자들에게 결정을 위임하기에는 모두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원전 사고가 난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전은 ‘오오쿠마마치(大熊町)’와 ‘후타바마치 (双葉町)’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사고 직후 두 마을의 주민은 전원 강제 피난길에 올랐고, 이후 오랫동안 마을에는 자유로운 출입과 거주가 금지되었다. 2020년 이후에 이들 마을의 출입 금지가 차차 풀리기 시작했는데, 올해에는 10년 넘게 계속된 강제 피난 조치가 해제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오오쿠마마치 출신의 일본인 친구가 있다. 그는 도쿄에서 직장을 다녔지만 고향 사랑이 남달랐다. 원전 사고 전에 부모님이 직접 재배한 복숭아나 배를 보내 주셔서 나도 종종 그 덕을 보았다. 예전에는 후쿠시마산 과일처럼 맛난 것이 없었다. 원전 사고 이후 그는 돌아갈 고향집이 사라졌고, 부모님은 졸지에 실향민이 되었다. 원전 사고로부터 몇 년 뒤 고향집에 들어가 보아도 좋다는 특별 허가가 떨어졌다. 두꺼운 방호복을 껴입고 단 몇 분 동안의 진입 허가를 받아 들어간 고향집. 거실의 시계는 대지진의 첫 진동이 집을 뒤흔들었을 2시 45분에 멈춘 채였다고 한다. 이후에도 친구는 오랫동안 고향집을 재건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만, 원전 사고 10년째인 지난해에 기약 없이 빈집으로 둘 수만은 없다는 가족 모두의 판단에 따라 고향집을 철거했다. 친구의 부모님처럼 원전 사고로 고향을 등진 후쿠시마 주민은 약 15만 명. 그들은 이미 예전과 같이 정겨운 고향 마을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피해 지역의 강제 피난 조치가 차차로 해제되고 있지만 귀환 의사를 밝힌 후쿠시마 주민은 소수에 불과하다. 방사선 오염에 대한 우려도 있을뿐더러 그동안 거주 환경이 악화되어 막상 돌아간다고 해도 제대로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후쿠시마의 안타까운 상황을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으로 재정립하려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심각한 재해나 사건, 사고 등이 있었던 지역이나 시설을 방문하는 견학 여행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고 하는데, 후쿠시마에도 이런 개념을 적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체르노빌에도 소수의 방문자들이 원전 사고의 피해 지역을 돌아보는 관광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후쿠시마는 가장 최근에 발생한 대규모 원전 사고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지역이다. 그 괴로운 경험을 사회적으로 소통하는 계기로 삼자는 반전의 발상이다. 한편, 후타바마치에는 형형색색의 그래피티 아트(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한 벽화)가 여기저기에 출현했다. 창작자 집단과 마을 주민이 협력해서, 시간이 멈춘 듯 황폐해진 동네에 예술로 활기를 불어넣는 일종의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이 도전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다. 이전의 활기찬 마을을 재현한 벽화를 보고 기뻐하는 이전의 주민들도 있고, 그래피티 아트를 마을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매김하자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시민들의 크고 작은 노력과 함께 후쿠시마의 새로운 얼굴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는 후쿠시마도 활기가 넘치는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언제가 될 것인지, 그때의 후쿠시마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시대 '불안의 연대'

한국에서는 후쿠시마 사고라면 일본산 먹거리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자연 환경이 맞닿아 있는 이웃 나라인 만큼 먹거리 문제가 제일 크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실 그 문제는 원전 사고와 관련된 수많은 이슈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지향적인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의 실효성에 관한 논의는 한국에서도 진행 중이다. 10년이 넘도록 원전 사고의 심각한 후유증에서 회복하지 못하는 후쿠시마의 현주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벡은 말한다.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시대에는 ‘불안’이야말로 사람들의 연대를 이끌어 내는 힘이라고. 위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후쿠시마의 교훈은 결코 작지 않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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