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구경꾼 되지 않겠다"며 역할 요구했지만
내부 불협화음에 자체 전략 없어 소외 자초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서방과 러시아가 연쇄 협상을 앞둔 가운데 정작 주요 당사자로 꼽히는 유럽연합(EU)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구경꾼’으로 전락할 위기감에 EU는 나름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협상 테이블에서 자리 하나 차지하지 못할 공산이 커 보인다. 회원국 간 이견으로 자체 외교ㆍ안보 전략이 없는 탓이라는 평가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현지시간) “EU가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러시아와 미국,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간 협상 테이블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반 러시아 정부가 들어선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군사동맹인 나토 가입을 추진하자, 이를 자국 안보 위협으로 판단하고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병력을 집결하면서 촉발된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에 EU 소외(패싱) 논란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실제 EU 회원국 27개국 가운데 21개국이 나토 회원인 점을 감안하면 EU도 우크라이나 갈등에 주요 당사자로 볼 수 있다. 요제프 보렐 EU 외교정책 집행위원이 최근 “유럽 안보는 단순히 미국-러시아, 나토-러시아의 문제가 아니라 EU가 관련된 문제”라며 “협상에서 구경꾼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서방과 러시아의 협상 테이블은 이미 마련된 상태다. 지난달 3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화상통화를 하면서 협상의 물꼬가 트였다. 미국은 러시아와 오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러시아가 제안한 안전보장 안과 관련한 첫 실무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12일에는 나토-러시아 협상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13일에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러시아 협상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다.
그러나 연쇄적으로 짜인 협상 테이블에 EU가 한자리 차지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당장 카운터파트인 러시아가 EU에 관심이 없다. 앤드루 바이스 카네기국제평화기금 러시아ㆍ유라시아 프로그램 부회장은 “러시아가 안보문제에서 EU와 협상할 아무런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러시아는 EU를 소외시키고 독일, 프랑스 등 개별 국가와 접촉하고 있다.
이는 EU 내부에서 안보 정책과 관련해 회원국 간 불협화음이 이어지면서 외교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EU는 국방과 안보 분야에서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독립적인 방위 능력을 키워 나토 의존도를 줄여 가기로 하고 별도의 EU 국방정책을 확정할 예정이었다. 2025년까지 병력 5,000명 규모의 유럽 합동군을 창설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회원국 간 이견으로 이 안은 채택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FT는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달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행동을 저지할 방법이 거의 없다’고 인정한 것은 EU 내 불협화음의 방증”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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