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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 엇박자, 판치는 브로커... 中, 자궁경부암 ‘백신 대란’

입력
2022.01.09 12:00
수정
2022.01.09 14: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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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가 HPV 백신' 전량 수입, 브로커 기승
접종률 1.4% 물량... 극심한 수급 불균형
여성 불안 노려 '가짜 예약' 돈벌이 사기
中, 자궁경부암 사망 매년 3만 명 웃돌아

중국의 한 소녀가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한 HPV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펑파이 캡처

중국의 한 소녀가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한 HPV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펑파이 캡처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횟수는 28억 회를 넘어섰다. 단순 계산으로 14억 인구가 두 차례 접종을 모두 마친 셈이다. 해외 지원 백신은 20억 회분에 달한다. 하지만 여성들이 우려하는 자궁경부암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백신을 수입하다 보니 공급물량이 수요에 한참 못 미치고, 여기에 브로커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부족 현상이 가중되는 백신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백신 강국을 자부해온 중국이 체면을 구겼다.

중국 전문가들은 “자궁경부암은 원인이 명확하고 조기에 예방이 가능하다”며 “백신을 맞고 주기적으로 관리만 하면 천연두와 마찬가지로 종식될 수 있는 유일한 암”이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중국 위생부에 따르면 매년 13만 명 넘는 여성이 자궁경부암에 걸린다. 이 중 3만 명가량이 목숨을 잃는다. 15~44세 중국 여성에게 발병하는 악성종양 가운데 두 번째로 많다. 특히 30세 이하 중국 여성이 전체 환자의 30%를 차지한다.

자궁경부암은 인유두종바이러스(HPV)가 원인이다. 따라서 예방의 시작인 HPV 백신 접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첫 단계부터 막혔다. 중국 신원왕은 지난달 28일 “9가 HPV 백신을 맞으려고 온라인 예약사이트에 접속해도 1초 만에 동이 나는 바람에 도무지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HPV 백신은 2가, 4가, 9가로 나뉜다. 숫자가 클수록 대응하는 바이러스가 더 많다. 가령, ‘2가 백신’은 2가지 유형의 HPV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따라서 수십만 원에 달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9가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다만 9가 백신 접종연령은 16~26세로 제한돼 있다. 반면 2가, 4가 HPV 백신은 9~45세 여성이 맞아도 괜찮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문제는 수급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집계한 16~26세 여성은 1억2,000만 명에 달한다. 반면 지난해 중국이 도입한 9가 HPV 백신은 506만6,000회분에 불과하다. 통상 3차례 백신을 맞는 것에 비춰 9가 접종 대상의 고작 1.4%만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셈이다. 젊은 여성들의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9가 HPV 백신. 펑파이 캡처

중국의 9가 HPV 백신. 펑파이 캡처


이런 심리를 악용한 브로커의 사기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애먼 소비자들은 이중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공안에 따르면, 사기꾼 일당은 먼저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병원 접종 예약이 가능하다’고 미끼를 던진다. 연락이 오면 이름과 주민번호, 휴대폰 번호 등 개인정보를 넘겨받아 예약을 대행했다고 속인 뒤 가짜로 ‘예약 완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는 ‘선불로 내야 백신을 맞을 수 있다’면서 돈을 입금하라고 유도한다.

공안은 “사기꾼 일당들이 제작한 병원 사이트 홈페이지의 경우 실제와 흡사해 쉽게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예약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지 말고, 개인정보를 알려주지 말고, 접종 이전에 돈을 보내지 말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공런르바오는 “브로커 한 명이 챙기는 수수료만 매달 수만 위안(수백만 원)”이라고 전했다.

이에 당국은 “값비싼 수입 9가 백신만 맹목적으로 고집할 필요가 없다”며 “중국산 2가, 4가 백신도 효과가 크다”면서 여론전을 펴고 있다. 이에 △15세 이하 여자의 90%가 HPV 백신을 맞고 △35~45세 여성의 70%가 고품질의 자궁경부암 검사를 하고 △양성판정을 받은 여성의 90%가 치료를 받는 ’90-70-90’ 구호를 내걸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자궁경부암 퇴치 기준으로 잡은 ‘10만 명당 발병 건수 4명 이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2025년에야 국내 개발 9가 HPV 백신을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9가 HPV 백신 대란’이 좀체 호전되지 않자 일부 지방정부는 묘안을 내놓았다. 광둥성 선전시는 브로커 개입과 공정성 시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16~26세 여성 누구나 신청하는 추첨제를 도입했다. 접종 대상자 선정 장면을 모두 녹화하는 것은 물론, 현장에 시민 대표가 참관하는 방식이다. 광시좡족자치구는 특정 세력이 백신을 싹쓸이하는 대량 예약을 막고자 자동입력 기능을 배제하고 일련의 과정을 수동으로 바꿔 예약자 확인 절차를 보완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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