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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신지예'를 소비하는 방식

입력
2022.01.04 21: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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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젊은 페미니스트 정치인 퇴출소동
정치영역의 젠더갈등은 여전히 소비재
피해자 의식의 부정적 효과 주의해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새시대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새시대준비위 수석부위원장으로 합류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환영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새시대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새시대준비위 수석부위원장으로 합류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환영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포스트트루스(post-truth), 감정이나 개인적 신념에 대한 호소가 객관적 사실보다 더 큰 힘을 갖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전해지는 소식은 우리의 감정을 들쑤셔 놓았다. 월요일 아침 새해 첫 출근의 마음을 다잡으며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을 주고받던 것도 잠시, 시시각각 쏟아지는 제1야당의 내홍 소식은 드라마틱했다. 늦은 저녁 뉴스에서야 사태의 전말을 알게 된 시민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정치는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현실에서 얻는 것은 '환멸'이란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가벼운 무관심과 조소?

무대 위 드라마의 시작은 한 청년여성 정치인의 퇴출 사건이었다. 이어 당과 선대위 주요 보직자들의 사퇴가 이어졌다. 퇴근 시간까지 소란이 계속되고, 뉴스와 그 뉴스를 반박하는 또 다른 뉴스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밤중이 돼서야 막을 내린 드라마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사태의 장본인 세 사람, 이런 소란의 원인은 '젠더갈등'을 오해하고 신지예라는 페미니스트를 잘못 영입한 데 있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젠더갈등'이 무엇이길래 이런 소동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모든 사태에서 '젠더갈등'은 원인이라기보단 결과이고, 정확히 표현하면 '소비되었다'는 것이다. 후보를 포함해 선거에 관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오류와 실패가 이제 막 30대에 들어선 청년여성에게 덧씌워지고 모든 책임은 그에게 있다는 단순명료한 해석과 뜨거운 분노로 말끔히 정리되었다. 탈진실 시대 정치가 젠더갈등을 소비하고 키우는 방식이다.

이제는 더 듣기도 불편한 '젠더갈등'이란 낯선, 그러나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 기묘한 단어와 현상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보고, 적절히 다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사실의 확인이다. 확증편향, 인지편향과 같은 탈진실 사회의 심리적 왜곡에 휩쓸리는 대신, '사실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젠더갈등이라고 불리는 현상 중 많은 것들은 '혐오'나 '차별'이기 쉽다. 남녀가 같은 이슈로 경쟁하고 충돌하기보다 현실에 대한 분노를 일방적으로 투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성의 삶이 불안정한 탓이 여성에게 있는가, 아니면 여성에게 돌리고 싶은가? 냉정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둘째, 여성 또는 남성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 생물학적으로 구분되는 여성 또는 남성은 사회·심리적으로 매우 다른 조건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우리는 각자 성별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국적·인종은 물론 계층·연령·지역·종교·사상·직업 등 여러 요인들이 교차해서 구성되는 다중적 정체성을 갖는다. 또 그런 정체성은 곧잘 변한다. 따라서 '여성' '남성'을 각기 동일한 집단으로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것은 현실적합성을 결여한다. 그런 대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그러므로 여성 또는 남성이 모두 피해자라는 인식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특정 연령 특정 세대의 여성이나 남성이 피해자라는 인식은 허구다. 각자 삶의 조건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20대 남성 또는 여성이라고 해도 내부 격차가 크고 경험과 인식도 다르다. 문제는 이런 집단적인 피해자 정체성이 갖는 사회적 효과다. 정치철학자 웬디 브라운은 피해자라는 집단적 정체성은 복수심의 대상으로 외부의 희생양을 찾고 자기애적 상처로 끊임없이 회귀함으로써 실패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고 보았다.

진정으로 청년을 돕는 길은 무엇인가? 젠더갈등을 키우는 정치와 해소하는 정치 중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청년들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ㆍ전 한국여성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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