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 5개국, 핵전쟁 방지 공동성명]
中 "성명 도출에 선도적 역할" 자화자찬
핵탄두 10배 많은 美보다 되레 큰소리
러시아 "우리가 제안해 성사된 것" 가세
美 '핵 선제 불사용' 원칙으로 이미 틀어
미국은 중국보다 핵무기가 10배 많다. 자연히 핵전력이 거론될 때면 중국은 미국 앞에서 수세적일 수밖에 없었다. 열세를 단번에 떨쳐낼 기회를 잡았다. 유엔 안보리상임이사국(P5ㆍ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5개국 정상이 3일(현지시간) ‘핵전쟁 방지와 군비경쟁 금지’ 공동성명을 발표하자 중국이 으스대고 있다. “핵 방지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건 중국”이라면서 공치사를 늘어놓는 데 여념이 없다.
P5 공동성명은 “핵전쟁에 승자가 없다”며 “핵무기는 상대방이나 다른 국가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핵무기 확산금지와 군축도 강조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공인 핵 보유국인 P5가 기득권을 지키되 서로 겨누지 말자는 약속이다. 2021 일본 방위백서에 따르면 미국 3,800기, 러시아 4,315기, 중국은 320기의 핵탄두를 갖고 있다.
그런데 핵탄두가 적은 중국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마차오쉬 외교부 부부장은 4일 신화통신에 “이번 성명은 대국 간 경쟁을 조정과 협력으로 바꾸고, 총체적 안정과 균형발전의 대국관계를 구축하는 데 긍정적 의미를 지녔다”면서 “중국이 성명 도출에 중요한 추진력을 불어넣는 선도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대국관계’는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입지를 강조할 때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다. 중국이 주도하지 않았다면 공동성명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국가안보를 지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핵전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그 자체가 전 세계 안정을 위한 중대 공헌”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그간 “핵무기가 없는 국가를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유일한 국가”라는 점을 내세우며 미국의 공세에 힘겹게 맞서왔다. 중국의 맹방 러시아도 끼어들었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을 인용, “공동성명이 러시아의 제안과 러시아 대표들의 적극적 참여로 준비됐다”고 전했다.
자화자찬하는 중국, 러시아와 달리 미국은 일찌감치 ‘핵 선제 불사용(NFU)’ 원칙으로 궤도를 틀었다. 이달 발표할 조 바이든 정부의 ‘핵태세 검토보고서(NPR)’에 NFU 원칙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매체들이 지난해 11월부터 전망한 내용이다. 이번 공동성명은 그 일환인 셈이다. 따라서 ‘중국 역할론’을 부각시키기엔 겸연쩍은 상황이다. 앞서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NPR에는 “중국, 러시아 위협에 대응해 핵무기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강경기조를 담았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이번 성명을 각자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 미국은 이란과 북한의 핵 확산을 제어할 명분을 재차 얻었고, 중국은 사이가 틀어진 일본과 오커스(AUKUSㆍ미국 영국 호주) 회원국 호주의 핵무장에 맞설 지렛대를 확보했다.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까지 가세해 우크라이나 정세에 개입하려는 상황에서 일단 미국과 소통의 끈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현재 어려운 국제 안보 여건에서 이 같은 정치적 성명을 승인함으로써 긴장 수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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