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 개정해 '최고소음 기준' 도입했지만
여러 시위 소리 합쳐지면 분리 계산 불가능
"현행법만으로는 단속 불가능… 대안 필요"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인근 집회 현장. 정의기억연대와 반일동상 진실규명 공대위, 위안부법폐지공동행동 등의 단체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장수현 기자
"회사 앞에 나갈 때마다 시위대의 욕설이나 노랫소리가 귀에 울리는 게 고역이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수요집회만 할 땐 괜찮았는데 다른 단체들의 맞불 집회가 겹치면서 시끄러워졌어요."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근처에서 최근까지 직장을 다녔던 윤모(28)씨는 집회 소음으로 인해 수요일 점심시간마다 불편을 겪었다고 말했다. 윤씨는 "소음이 심한데도 경찰들이 제지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집시법) 개정으로 집회 소음 제한 규정이 강화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같은 장소에서 여러 집회가 동시 진행되면서 빚어지는 '중복소음'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어 시민들이 여전히 불편을 겪고 있다.
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월 집시법이 개정돼 집회 소음 허용치가 최저치 기준 60데시벨(㏈)에서 55㏈로 낮아졌고, 최고 소음 기준이 새로 생겨 같은 곳에서 1시간 이내 3회 이상 기준을 초과하면 제재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도심 집회가 으레 그렇듯이, 여러 시위대가 모였을 땐 중복소음으로 인해 단속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개 이상의 시위대가 가까이 있을 땐 소음이 함께 측정돼 각 시위대가 얼마만큼의 소음을 내는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시법 기준을 훌쩍 넘는 소음이 발생해도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보니, 시위 현장을 지나는 시민이나 인근 가게들의 피해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고소음 제재 기준' 10분 만에 넘겨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인근 평화의 소녀상 집회 현장에서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소음측정기'(왼쪽)와 'db 소음 측정기'를 이용해 측정한 소음. 오후 12시 17분 기준 최고 소음이 모두 105㏈을 기록하고 있다. 장수현 기자
한국일보는 지난달 29일 정의기억연대, 반일행동 등이 동시에 집회를 진행하던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을 찾아 오후 12시 5분부터 15분간 소음을 측정했다. 시위대로부터 10m가량 떨어진 곳에서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 2종을 이용했다. 단, 집시법에 따르면 소음 측정은 현장 경찰이 인증받은 기기로 할 때만 법적 효력이 있다.
시위대가 마이크를 들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 돼 '1시간 내 3번 이상 95㏈ 초과'라는 최고 소음 제재 기준에 도달했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이런 경우 경찰은 주최자에게 경고 조치를 하고, 주최자가 조치에 응하지 않거나 조치를 거부 또는 방해하면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 원 이하 벌금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현장에선 별다른 제재가 따르지 않았다.
인근 직장인들은 계속되는 소음에 불편을 호소했다. 소녀상 맞은편 건물 1층 음식점에서 일하는 직원 A씨는 "제일 바쁜 점심시간에 소음 컴플레인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며 "심한 날엔 주문하는 손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건물의 프런트 직원 B씨도 "거리두기 강화로 줄어든 집회 인원을 보충하겠다는 심산인지 앰프 볼륨을 높이는 통에 건물 안에서도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난감해했다.
시민 불편 해소할 실질적 방안 필요
반복되는 민원에도 경찰은 시위대를 강력하게 제재하지 못하고 있다. 집회마다 소음도를 재고는 있지만, 여러 소리가 동시에 측정될 경우 어떤 시위대가 소음 기준을 위반했는지 가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데시벨 계산법상 소음 에너지가 2배가 되더라도 실제 데시벨은 3㏈밖에 오르지 않는다. 시민들이 체감하는 중복소음 피해가 수치상으로는 명확히 안 드러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중복소음 문제를 해결할 별도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지연 용인대학교 산업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중복소음을 따로 집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애초에 소음도가 일정 수준을 초과하는 확성기 사용을 금지하거나, 집회 금지 시간을 확대하는 방법 등을 통해 시민 불편을 줄일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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