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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벌이를 위한 돌봄 정책은 없다

입력
2022.01.0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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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11월, 초등학생들이 돌봄시설인 서울 송파구 송파쌤 미래교육센터 내에 마련된 키움센터에서 케이크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초등학생들이 돌봄시설인 서울 송파구 송파쌤 미래교육센터 내에 마련된 키움센터에서 케이크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6개월 뒤 일을 시작할 예정인데, 중간에 방과후과정반으로 바꿀 수 있나요?"

한 해 계획을 세우는 이맘때쯤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오는 질문 중 하나다. 지금은 외벌이라 등록할 수 없었지만, 일을 하게 되면(맞벌이가 되면) 돌봄 시간이 더 긴 유치원 방과후과정반에 다닐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경험상, 중간에 방과후과정반으로의 변경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교육과정을 1년 단위로 운영하는데다, 인구밀집도가 높은 수도권에 산다면 더욱 더. 몇 개월 뒤 일할 계획이 있더라도,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더라도, 지금 당신이 외벌이라면 오후 2시 이후의 돌봄은 알아서 해결해야만 한다.

외벌이 가구는 종종 국가 돌봄 정책에서 너무 쉽게 배제된다. 유치원의 방과후과정반이 대표적이다. 교육과정반은 보통 오후 2시, 방과후과정반은 오후 5시까지 운영하는데 수도권 유치원 대부분이 맞벌이에 우선권을 준다. 방과후과정반에 등록하려면 재직증명서나 사업자등록증명원으로 부부 모두 일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맞벌이가 사실상 자격 요건이 된다. 정책이 한정된 예산을 분배하는 기준이라고 정의했을 때, 이 정책 근거는 거칠게 말하자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집에 있는 당신은 덜 급하잖아' 혹은 '집에 있는 당신은 시간이 많잖아'.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분법적 돌봄 정책은 정부와 언론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무수한 돌봄 공백을 야기한다. 맞벌이를 앞두고 있는 가정은 결국 추가로 사적 영역을 동원해 아이를 맡겨야 한다. 몸이 아프거나 또 다른 자녀를 돌보느라 여력이 없더라도 그저 맞벌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고 만다.

맞벌이와 외벌이라는 분류 자체가 집안일은 덜 중요한 것이며, '바깥일'은 더 중요한 일이라는 편견을 공고히 하는데 쓰이는 경향이 있다. 가정 내 돌봄과 가사를 책임지는 주체가 주로 '전업맘'으로 불리는 여성임을 고려하면, 집에서 아이 보고 밥 하고 빨래하는 여성의 시간을 밖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남성과 여성의 시간의 후순위에 두는 것을 제도화하기 때문이다. 전업맘을 '집에서 논다'고 폄하하는 세간의 인식과 발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사노동에 대한 이런 차별적 인식은 지난해, 68년 만에 뒤늦게 가사근로자법이 제정되고 가사서비스가 법적 노동임을 인정받게 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맞벌이 중심의 돌봄 정책은 역설적이게도 '1983년 여성 4명 중 1명이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는 현실(통계청)'을 구조적으로 고착화한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자녀에 대한 충분한 추가 돌봄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지금 당장 일을 하고 있지 않으니 안 된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방과후과정반에 보내기 위한 편법도 난무한다. 실제 일을 하지 않는데도, 아는 사업체에 이름을 올려 서류상 맞벌이를 만드는 사례가 빈번하다.

교육부는 올해 유치원 유아학비 지원금을 1인당 26만 원(교육과정반 기준)에서 28만 원으로 2만 원 올린다. 새해는 여러 지자체가 출산지원금을 200만 원까지 인상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러나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시간이다. 더 이상 맞벌이 여부로 돌봄 수요를 재단하지 않을 때, 외벌이 가정의 시간도 맞벌이 가정의 시간과 동등하게 대우할 때, 돌봄 정책의 이 무수한 구멍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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