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남측 대선 감안 '관망' 기조
코로나 방역 및 경제난 해소 등 내치 시급
백신 협력 통해 남북관계 개선 여지 남아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에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최장 기간(5일) 진행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대남ㆍ대미관계를 논의하고도 원론적 입장만 담긴 ‘한 줄’짜리 메시지를 내놓은 데 그쳤다. 올해 상반기를 한반도 정세 전환의 적기로 보고 대북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려던 정부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66자 그친 대외 메시지... 北, 정세 관망 지속
북한 노동신문은 1일 지난달 27~31일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 결과를 1만4,890여 자로 정리해 보도했다. 이 중 남북ㆍ북미관계와 관련한 대외 메시지는 “다사다변한 국제정치 정세와 주변환경에 대처하며 북남(남북)관계와 대외사업부문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적 문제들과 일련의 전술적 방향들을 제시했다”는 한 문장뿐이었다. 전체 분량의 0.5%도 안 되는 66자에 불과했다. 지난해처럼 이번 회의 결론이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를 대체하는 무게감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의 당면 과제가 남북미 관계 개선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북한이 대외정책을 꼭꼭 숨긴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더구나 최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걸고 넘어지며 첫 대북제재에 나서는 등 북한의 반발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북한의 침묵은 우선 전원회의 결론대로 복잡한 국제정세가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고조되는 미·중갈등에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3월 남측 대선 등 외부 변수가 산적해 있다. 북한 입장에선 정세가 불확실한 와중에 섣부른 행동으로 트집을 잡히느니 계속 관망하며 운신의 폭을 넓히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대화를 말하면서도 정작 북한이 원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 등 ‘조건’은 나중에 논의하자는 미국과 올림픽 기간 중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원하는 ‘혈맹’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이번 회의 기간 대남ㆍ대외관계 분과를 따로 만들어 대외정책을 꼼꼼히 살펴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2일 “북한의 한 줄짜리 결론은 대남ㆍ대미 정책을 공개하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방증”이라며 “종전선언에 명확한 입장을 보류하면서 일단 한미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경제난 해소 등 '집안 단속' 급선무
당분간 ‘내치(內治)’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론도 반영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제난 타개 등 내부 문제 해결이 시급해 대외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2021년을 “승리의 해”로 규정하면서도 간부들을 향해 “다음 해 사업의 전략적 중요성을 자각해야 한다”며 각성을 촉구했다. 북한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간 제재가 풀릴 조짐이 없다는 점에서 식량난을 해결하려면 자력갱생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의 폐쇄ㆍ통제 기조는 문재인 정부에도 악재다. 신문은 “비상방역 사업을 국가사업의 제1순위로 놓았다”고 단언했다. 북한이 계속 문을 걸어 잠그면 종전선언과 인도적 협력을 지렛대 삼아 임기 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되살리려는 현 정부의 구상도 꼬일 수밖에 없다.
다만 북한이 ‘선진적ㆍ인민적 방역’ 등의 표현을 쓴 만큼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도입을 위해 손을 벌릴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 경우 대북교류를 기반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틀 여지가 생긴다.
'김정은 입' 김여정 입지는 그대로
전원회의 관전 포인트였던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의 정치국 복귀는 불발됐다. 북한이 1일 공개한 회의 공보에서 김 부부장은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 보선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는 2020년까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정치국 후보위원을 겸했으나, 지난해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 위원으로 강등됐다.
물론 대남ㆍ대미 업무를 총괄하며 ‘김정은의 입’ 역할을 하는 기존 입지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은 이날 김 위원장의 올해 첫 공개 행보인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도 동행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여정은 ‘실질적 2인자’로 앞으로도 대외정책 전반에 관해 북한 지도부의 입장을 대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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