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야구부 감독에 매달 '십시일반' 건넨 학부모회장, 청탁금지법 위반 취소 이유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야구부 감독에 매달 '십시일반' 건넨 학부모회장, 청탁금지법 위반 취소 이유는

입력
2021.12.31 14:00
수정
2021.12.31 14:07
10면
0 0

학부모 40여명 매월 65만원 회비 입금
'연구비'로 감독에 매달 약 200만원 제공
검찰, 학부모회장 청탁금지법 위반 판단
헌재 "학부모 개개인이 지급한 걸로 봐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경남의 한 고교 야구부 학부모 회장이던 A씨는 2016년 6월부터 야구부 감독에게 거의 매달 200여만 원을 쥐어 줬다. 부모 40여 명이 매월 65만 원씩 모은 회비에서 10% 정도를 감독에게 떼어 준 것이다. 명목은 '연구비 등'이었다. A씨는 그렇게 1년 2개월간 학부모들의 성의를 모아 감독에게 2,540만 원을 건넸다.

A씨는 수년 뒤 검찰에서 연락을 받았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통보를 받은 그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청탁금지법이 없을 때부터 매달 관행적으로 감독에게 줘왔던 금품이 2016년 9월 법이 시행되면서 위법 판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A씨가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등'에 해당하는 교직원 B씨에게 법에서 규정한 한도를 넘어 금품을 제공했다고 봤다. 청탁금지법에선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 원 또는 1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주고받은 사람에 대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A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감독에게 금품을 제공한 경위를 설명했지만, 검찰은 지난해 5월 A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청탁금지법을 어긴 죄는 인정되지만 당시 사정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선처성 처분'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금품을 수수한 감독 B씨가 올 9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대법원은 '금품 제공 주체인 학부모회가 청탁금지법상 동일인에 해당하지 않고, 학부모 1인당 받은 돈은 1회 100만 원 또는 회계연도 300만 원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A씨는 B씨 선고 결과를 근거로 자신에게 내려진 기소유예 처분을 인정할 수 없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대법원 판결을 고려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A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헌재는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함에도 자의적으로 검찰권을 행사해 A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청탁금지법상 '동일인'에 해당하려면 자연인이나 법인이어야 하고, 학부모회는 법인에 해당되지 않을 뿐 아니라 회칙·목적에 비춰 독립단체로서 조직과 독자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어 "감독에게 제공된 금품은 학부모들이 매월 회비 계좌에 입금한 돈으로, 이들은 그 일부가 회칙에 따라 연구비 등 명목으로 야구부 감독에게 지급된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짚었다.

헌재는 "이를 학부모회라는 동일인이 제공한 것으로 인정하긴 어렵고, 학부모회 구성원 개개인이 준 것으로 보는 게 상당하다"면서 "학부모회 구성원 숫자로 액수를 나눠도 1인당 청탁금지법 가액을 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는 학부모들 의사에 따라 모인 금품을 회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집행한 것에 불과해 청탁금지법 위반 인정을 전제로 내려진 검찰 처분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유지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