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ㆍ미용사 출신 '인생 3막'
남다른 외모에 폼도 변칙이지만 기량은 '넘버1'
앞머리에 꽂은 '실핀'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풍채만 보면 상남자지만 그래서 동료들 사이에선 '아줌마'란 별명으로 통한다. 범상치 않은 외모로 시선을 사로잡은 황봉주(38·경남당구연맹)가 당구계의 대세로 떠올랐다.
황봉주는 지난달 30일 서울 문정동 호텔 파크하비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1 HOLLYWOOD KBF 3쿠션 마스터스' 결승에서 전통의 강자 허정한(경남연맹)을 꺾고 생애 첫 정상에 등극했다. 37이닝 만에 50-46으로 승리해 우승상금 3,000만원을 거머쥐었다. 2007년 대한당구연맹에 선수 등록을 한 지 14년 만의 쾌거다. 황봉주는 31일 본보와 통화에서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사실 경기 내내 엄청 떨었다"고 털어놨다.
황봉주가 당구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건 지난 7월이다. '호텔 인터불고 원주 월드 3쿠션 그랑프리 2021'에서 세계의 강호들을 연파하고 결승까지 올랐다. 딕 야스퍼스(네덜란드)에 패해 준우승에 만족한 뒤에는 눈물을 쏟아내 더 화제가 됐다.
큐 하나로 정상에 서기까지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부산 출신인 황봉주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고등학교에도 특기생으로 입학할 만큼 축구 유망주였다. 그러나 자영업을 하던 아버지 사업이 잘 풀리지 않자 1학기 만에 자퇴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지인의 소개를 받아 발을 들여 놓은 곳은 미용실이었다. 악착같이 배워 헤어 디자이너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2년 동안 미용사로 활동했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당구장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고교 1학년 때 취미로 당구를 시작해 3개월 만에 250점을 칠 정도로 재능이 있었지만 직업이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황봉주는 "미용 일을 하면서 새로 이사한 집 근처의 당구장을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고수들이 대대에서 치는 모습을 보고 푹 빠졌다"고 말했다. 그리곤 매일 당구장으로 출퇴근하면서 본격적으로 당구에 입문했다.
실력이 일취월장해 선수 등록까지 했고 대회에도 출전하던 그는 이내 곧 매너리즘에 빠졌다. 황봉주는 "당구를 쳤지만 그저 놀이로만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더 이상의 호기심도, 발전도 없어 중단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막상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자 다시 당구 생각이 났다. 4년을 떠나 있던 황봉주는 결국 2018년 복귀했다. 그리고 그 해 지역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다시 심기일전했다.
'야생'에서 길들여진 그는 여러 모로 독특하다. 장발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는데 상체를 숙여야 하는 당구 종목의 특성상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는 걸 막기 위해 앞머리에 실핀을 꽂고 경기에 임한다. 황봉주는 "머리를 기른 지 1년 정도 됐는데 앞머리가 내려와서 그냥 실핀을 사서 꽂게 된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7월 대회 이후 한 번 잘랐고, 주변의 조언에 따라 더 짧게 자를 생각"이라고 '변신'을 선언했다. 콘택트렌즈 대신 커다란 안경을 쓰는 것도 그만의 루틴이다.
팔꿈치가 몸통에 바짝 붙은 채 나오는 어드레스도 교과서적인 당구 폼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천재적인 감각을 앞세워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제 폼 웃기죠?"라고 되물은 그는 "처음 당구를 배울 때는 엄청 지적을 받았고, 고치려고도 해봤는데 그러면 당구가 마음대로 안 되더라"면서 "폼을 고치기보다 당구를 더 잘 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연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황봉주는 "외모나 폼은 신경쓰지 않는다. 관심에 감사할 뿐이고 실력으로 살아남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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